코로나19로 지금까지 세계에서 20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1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각 국가의 공중보건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의 대응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고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단기에 종식되기 어려우며, 사회경제체계와 정치체계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바이러스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자원의 불평등을 의미한다. 외국의 부유층이 호화 대피소를 구매하고 카리브해의 외딴 섬으로 피신하는 사례와 더불어 개인용 항공기와 요트 수요가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다. 뉴욕시 코로나 사망자 분포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 경제적 빈곤층에 편중됐다. 인도에서는 뉴델리와 뭄바이 등 대도시가 봉쇄되자 일자리와 주거를 잃은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도시를 탈출했고, 이로 인해서 바이러스의 확산이 우려되기도 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이처럼 각국의 사회경제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이윤추구나 시장 논리에 우선해서 보장하려면 의료시스템의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포드자동차나 가전업체 다이슨도 인공호흡기를 생산하고, 루이뷔통도 알코올 세정제를 만든다. 빌 게이츠의 말대로 마스크나 진단 검사장비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쪽에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공중보건과 의료 수요를 바탕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나아가 바이러스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이며, 백신의 개발에 각국 정부가 협력해야 하고, 또 개발된 백신은 적정한 가격으로 전 세계 모든 환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미국의 분담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미국은 바이러스에 대한 국내 대처에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바이러스에 맞서는 인류의 연대를 훼손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의료시스템의 공공성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신자유주의-시장화의 흐름에 의해 밀려나 있던 공공성의 이념과 연대의 가치를 다시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는 도시봉쇄와 격리로 인해서 야기된 대량실업 사태다. 4월 7일 국제노동기구의 추산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전면 혹은 부분 폐쇄로 세계 노동자의 81%인 27억 명이 영향을 받고, 12억 5천만 명의 노동자가 감원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한국도 3월 들어 새로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이 19만 명을 넘었다. 실업급여를 신청할 자격도 없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 몇 배에 달한다.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한국 정부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의 조건으로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각서를 노사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지난 3월 말 한국경총이 코로나 대책의 일부로 경영상 해고 요건의 완화를 건의한 것도 비슷한 관점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정반대의 해법을 요구한다. 고용을 유지해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고, 실업자에게는 소득을 제공해주는 것이야말로 공공성의 가치에 부합한다. 따라서 공적 자금의 지원 조건으로 감원을 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오히려 기업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사회경제체제의 운영에 공공성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관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사실에 기초한 토론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확대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4.15 총선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국회가 코로나19 이후 당면한 사회적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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