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4·15 총선일을 앞두고 선거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총선의 승패를 알지 못하더라도 이번 총선이 드러낸 문제들은 분명하므로 그에 관한 얘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21대 총선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례없는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코로나 방역에 대한 관심이 총선의 다른 이슈들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내내 계속되었다. 선거 기간의 여론조사들에서 여당 쪽이 시간이 지날수록 우세를 보였던 것도 정부의 방역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코로나 방역에 온 신경이 가 있던 국민들의 감시가 덜해져서였을까. 이번 총선은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모습들로 얼룩지고 말았다. 최대의 사건은 여야의 제1, 제2당이 벌인 비례 위성정당 창당의 대소동이었다. 소수 정당들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해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꺼낸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까지 똑같은 꼼수로 대응함에 따라 첫 시행부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두 당은 이런 상황의 책임이 서로 상대에게 있음을 부각시켰지만, 어느 한쪽의 책임만 탓할 수 없는 공동의 책임이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는가에 상관없이, 여야 두 당은 21대 국회를 시작하기 이전에 깊은 성찰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것은 통합당 일부 후보들의 막말 릴레이였다. 특히 세월호 유족들을 비하하는 후보를 공천하고 다시 막말이 이어져도 뒤늦게야 제명에 나선 그 당의 모습은 보수통합을 하고 당명을 바꿨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묻게 만들었다. 막말과 증오의 정치를 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가 될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큰 실망의 대상이 되었던 중심에는 황교안 대표의 구태의연한 리더십이 있었다. 그는 중도 확장성을 시도했던 공천 막판에 개입하여 자기 사람들을 챙기다가 공천 전체의 빛을 바래게 만들었는가 하면, 교회 발언이나 n번방 발언 등 잇단 말실수로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줄곧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이야말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모습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황교안 리더십은 그에 적합한 것인지, 통합당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다시 찾아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여 탈바꿈해야 보수정당이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 과정은 일깨워주었다.

승패와는 상관없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여러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정부의 방역 결과가 여론의 좋은 평가를 받은데 힘입었을 뿐, 막상 여당의 정치 행위 자체가 성찰적 변화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시민당이나 열린민주당 같은 범여권 정당들에서 나오는 강경한 목소리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을 향한 여권의 복수혈전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벌써부터 낳고 있다. 설혹 총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낳더라도 여당이 겸손과 절제의 미덕을 잃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오만에 사로잡힌다면 정국은 다시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승자의 겸손을 주문하곤 한다. 하지만 두 정당이 선거전에서 보인 모습을 돌아보면, 이들에게 승리란 이제까지 있었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면죄부로 여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제20대 국회는 출발 당시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내내 개점 휴업 소리를 듣는 최악의 국회로 끝나게 되었다. 기대를 모으며 출발했던 국회도 결국 그러할진대, 선거 때부터 이미 실망을 안겨준 정당들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는 의문이다. 패자는 민심을 얻지 못한 이유를 성찰하고, 승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도 많았던 이유를 성찰해야 할 텐데, 누구든 과연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찍고 싶어서 찍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찍어야 했던 유권자가 많았던 현실의 의미를 각 정당들이 마음 깊이 담아주기를 바란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제21대 국회가 달라질 수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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