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우리 학교 정문을 지나면, 넉터에서 인문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봄이 오면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치마를 입는 여학우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등학생 때 이상하리만치 계단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남고생들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학교에 갈 때 치마를 입지 않는다. 한 번은 학교 커뮤니티에 노브라인 여자를 봤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쓴 사람을 욕하면서도 나도 노브라로 다니는데, ‘혹시 나인가?’ 하며 내 몸에 달려 있을 뿐인 가슴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괜히 신경이 한 번 더 간다.

수업에 들어간다. 남자 교수님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성적이 중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의를 제기했을 때 다른 학우들의 반응도 무섭다. 하루아침에 ‘부산대 꼴페미년’으로 학교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다. 신상이 털릴 수도 있다.

다음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간다. 화장실에 구멍이 없는지 확인한다. 몇몇 구멍은 휴지로 겨우 막혀있다. 혹시 모르니 화장실 문고리 등, 카메라가 있을 만한 곳에 외투나 가방을 걸어 막아놓는다. 그리고 얼굴을 최대한 숙인 채 볼일을 보고 빠르게 일어난다. 한때는 항상 모자를 들고 다니며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쓰곤 했다. 친구들은 실리콘을 가지고 다니며 보이는 구멍마다 막거나 작은 송곳을 들고 다니며 카메라가 있을 만한 곳을 찔렀다. 예전에 그 구멍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볼일을 봤었는데, 내 얼굴이 박힌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으면 어쩌나 여전히 걱정이 된다.

이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다. 그리고 그 피곤함은 일상이 된다. 내가 예민하다거나 이 글이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맞다. 나는 예민하고 이 글은 진부하다. 하지만 여전히 해야 하는 이야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준영은 원정 성매매 혐의로 벌금 100만 원 약식 명령을 받았다. 미성년자 성매매 전과자인 연예인들은 여전히 활발히 배우 활동을 하거나 음원을 내서 승승장구한다. 나는 예민하지 않을 수 없고, 나의 하루는 진부하게도 변하지 않았다.

N번방은 이런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났다. N번방 사건은 충격적이지만 전혀 새롭지 않다.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부터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김학의, ㅇㅇㅇ동영상 등등 한국은 유구한 성착취의 역사를 자랑한다. 1997년에 태어난 내가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될 때까지 법은 항상 가해자의 편이었고,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죽었다. 그런 현실에서 자라온 여성들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서로의 ‘예민함’을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손을 맞잡고, 살자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일상이 되어버린 잔인한 하루들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 죽어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다, 몇 번이고 되뇌면서.

양소영(사회학 16)
양소영(사회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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