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어두워지고 목이 조여오며 숨이 가빠진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Panic disorder’, 공황장애를 설명하는 말이다. 영화 <성혜의 나라> 속 성혜(송지인 분)는 자신에게 닥친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에 이 같은 증상을 경험한다. 4년 전 회사의 성추행을 고발하고 퇴사한 성혜는 그 후로 동종업계에 취업하지 못 한다. 취업을 위해 그녀는 학원에 다니며 밤에는 편의점 일과 신문 배달로 자신의 생활비와 아버지의 병원비를 충당한다. 매일 3시간 남짓의 수면과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끼니. 이로 인해 생긴 위염과 생리 불순은 그녀의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암울한 현실에 지친 성혜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수면제를 모은다. 수면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그녀는 꾸준히 병원에 방문한다. 성혜는 의사와의 상담 중 자신의 직업을 대학원생, 돈을 버는 수단은 개인과외라고 답한다. 현실과는 사뭇 다른 대답이다. 이어 그녀는 편의점에 나타난 전 직장동료에게도 자신이 편의점 주인의 딸이고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거짓말한다. 이같이 성혜는 타인에게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들키기 싫어 거짓말을 방어기제로 활용한다. 이러한 행동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는 성혜의 잠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제작한 정형석 감독은 20대가 고시원에서 많이 자살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이 주제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그는 독거노인도 아닌 청년이 단칸방에서 죽음을 결정하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청년에게 심각할 정도로 우울한 현실이 드리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꼭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가 흑백으로 제작된 점도 청년이 겪을 수 있는 끝없이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성혜의 삶을 통해서 끊임없는 경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청년의 잔혹사를 조명한다.

감독의 의도는 영화 끝부분 성혜의 방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도 방향도 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의 모습. 정처 없는 막연한 여정이지만 그녀는 햇살같이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도입부에서의 암울한 표정으로 학원과 편의점을 오가던 과거와는 대조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해한다. “일을 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을 누가 욕하진 않겠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문을 품는 것이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성취하는 것만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사회에 길들여진 전형적인 청년의 모습이다. 

이처럼 영화는 청년이 ‘할 일을 제쳐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을 어색하고 돌연변이적인 것으로 여기는 현실에 허무주의적 물음을 던진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진짜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지. 사실 사회가 제시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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