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비정상이 정상화”된 듯하다. 가령 TV에서 드라마가 나오면, 위화감이 든다. ‘왜 등장인물들이 한 사람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거지? ...거리에도 마스크 쓴 사람이 없네?’드라마에 비친 모습,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웃고 대화하며 봄날을 즐기는 모습이 ‘정상’이련만, 어느새 ‘비정상’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진 ‘웃픈’ 현실이다.

언제나 끝날까.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뒤바꾸고 있는 코로나19는 그 대응책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국경을 꽁꽁 틀어막고, 도시들도 봉쇄하고, 국민들도 무조건 집에 있어라, 지시를 어기고 나돌아다니면 고액 벌금이다!이렇게 철저한 차단 정책을 쓰는 나라도 있고, 우리처럼 기본적으로는 통행을 막지 않으면서 꼼꼼한 검역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의존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집단 면역이 이루어지기만 기다리는 나라도 있다.

역사 속에서 무서운 전염병은 많았다. 현대처럼 무엇이 어떻게 병을 일으키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13세기에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쓰러트렸고, 세계적으로 2억 이상의 인명 피해를 입힌 흑사병, 페스트다. 

중세 유럽인들도 페스트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최선이라야 마녀사냥, 유대인(어느 시대나 역병은 유대인들의 음모라는 말이 돌곤 했다) 학살, 그리고 마녀를 상징하는 고양이 대학살 등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일 노력도 했다. 바로 장벽 쌓기!유럽의 도시와 도시 사이를 높은 돌담으로 빠짐없이 둘러치고, 병자들(그리고 피난민들)의 통행을 막은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쥐와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이 페스트를 옮긴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세운 장벽이었기에 오히려 병의 확산에 부채질을 하고 말았다. 그대로였다면 황무지나 도랑, 강물 등에 가로막혔을 쥐들이 장벽을 길처럼 타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녔던 것이다. 고양이 대학살도 쥐들의 숫자를 줄일 방법을 스스로 차단한, 안 하느니만 못한 정책이었다. 결국 우리가 아는 대로, 전 유럽이 페스트로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페스트 장벽이 효과를 본 경우도 있었다. 1720년, 마르세유에서 시작해 프랑스 남동부를 휩쓴 페스트 유행 때다. 당시까지도 인류는 쥐와 쥐벼룩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19세기 말이나 되어야 밝혀진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긴다는 사실은 알았다. 마녀사냥, 고양이 학살 따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도 알았다.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장벽을 치라고 명령했다. 그렇지만 13세기 때처럼 이 조치가 전염병을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도시와 도시를 ‘이어 주는’ 장벽이 아니라 도시나 마을을 단단히 둘러치는 성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엄중히 막았다. 저항하거나 벽을 넘으려는 사람은 왕의 군대가 가차 없이 사살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으므로 가끔 성벽을 열어 사람과 물자를 들여보냈고, 그 때문에 남프랑스 일대에는 페스트가 퍼져 1722년까지 10만 명 이상이 숨졌다. 그러나 북프랑스까지는 페스트가 퍼지지 못했고, 그것은 장벽과 철저한 격리 정책에 힘입은 것이었다. 만약 그런 대응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물론 이웃 나라까지 페스트가 번지고, 13세기의 악몽이 재연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과연 어떤 정책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염병을 일찍 종식시킬 수 있는 정책일까. 과거보다 뛰어난 과학기술과 시민의식을 갖추고 있지만, 과거와는 달리 경제와 산업에 미칠 영향, 그리고 외교 문제와 인권 문제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이기에, 현명한 선택은 더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 교수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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