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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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은 바쁜 일상으로 그들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감히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말하자면, 사실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그러나 얼마 전 신문사 동기로부터 올해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취소됐다는 말을 듣고 난 후, 그들은 내 세상에 한 발짝씩 자리를 잡아갔다. 겨우 축제가 제3회를 맞이했는데 취소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알아보니, 이전에 열린 두 차례의 퀴어 축제도 수월하게 열린 것은 아니었다. 행정구역의 제재에 부딪히며 이뤄낸 축제였다. 인터뷰에서 축제조직위원회가 제3회 축제 역시 행정구역의 제재로 인해 안전을 우려하여 취소했다더라.

“성적지향이 뭐예요?”.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모 행정구역 <인권기본조례> 담당 관계자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해당 행정구역은 인권조례에 차별금지 이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는 개정으로 논란을 빚었던 곳이다. 종교단체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과 개정안이 온전한 차별금지를 담지 못했다는 의견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우리 조례에는 성적지향 그런 말 없어요”. 성적지향 단어가 포함된 <인권기본조례>를 가진 행정구역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질문에 회피하는 답변만 하거나 무관심한 담당자의 태도에 필자는 화가 났다. 이들은 <인권기본조례>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인권기본조례>는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권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총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통일된 인권 의식을 조성한다. 행정구역이 정한 <인권기본조례>가 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지침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중역을 맡은 행정구역의 태도에서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 시민들의 가치관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역할에 대한 책임감 말이다. 행정조직이 만들어낸 결정은 시민들의 행동과 판단의 기준, 습관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그들은 무관심했다. 

왜 관심을 가져야 할 행정조직원도 무관심할까. 성 소수자에 대한 논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반대단체는 생래적·신체적 특징만을 기준 삼은 양립된 성만을 근거로 들어 성 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시민들의 인권 의식 고취를 담당하는 행정조직은 이 상황을 회피한다. 더 큰 분란을 만들지 않고자 반대단체의 손을 들어주기도 한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세력이 더 강한 단체의 편을 드는 것이다. 인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성에 대한 관념이 넓어지는 이 시대에 조직은 경직으로 일관한다. 여러 국가가 이미 성 소수자와 함께 살아가지만, 회피하거나 무관심한 태도의 조직으로 인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직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조직은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나아가야 한다. 퀴어를 향한 차별이 난무한 사회에서 성 소수자들은 용기를 내 퀴어축제를 열지만, 행정조직은 그들을 제재한다. 누가 봐도 차별의 대상이 분명한 성 소수자들을 차별금지조항에 넣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조직의 모습은 시대 흐름에서 퇴보하는 행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나아가기 위해서는 행정구역과 같은 공적인 조직의 인식 변화가 우선이다. 이는 곧 시민들의 인권 인식 고취로 이어질 것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 벌써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위협받고, 제재당하는 힘겨운 퀴어의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내년에는 부산에도 무지개를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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