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특강을 나갔던 한 대학의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부 인사와 함께 한 번 뵙고 싶다고. 달뜬 표정으로 필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소설을 쓴다는 여학생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러자고 대답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학기가 끝나고 나서도 연락을 해 온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필자가 좋은 선생이거나, 탁월한 강의법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한 학기 후, 어떤 경우는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그들은 모두‘문학’을 꿈꾸는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안부 인사의 끝은 필자의 메일 주소를 묻는 것으로 끝이 났고, 그들은 전화 통화를 끝내자마자 필자의 메일로 몇 개의 원고를 보내왔었다. 이름과 제목을 정직하게 적은 습작 원고들. 어떤 마음으로 그 원고들을 쓰고, 필자에게 연락을 했을지. 답답함과 두려움, 주저하고 망설이는 마음, 그럼에도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욕망들. 정리되지 않은 그 감정들이 부족한 선생이었던 필자에게까지 연락을 하게 만들었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필자 역시 가졌던, 아니 지금도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습작 원고를 읽은 소감을 다시 답메일로 보냈다. 그렇게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학생들은 필자에게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묻기도 했다. 

“문학을 해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요?”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시어(詩語)를 섬세하게 골랐으며 시나리오의 구성을 수정했지만, 현실적인 질문들이 그 모든 것 앞에 가장 서 있었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활짝 펼칠 수 없는 건, 그것이 밥벌이가 되기 어렵다는 지독한 현실 때문이었다. 

어떤 답을 돌려주어야 할까, 머뭇거림 앞에서 떠오른 책은 김필균의 인터뷰집 <문학하는 마음>이었다. <문학하는 마음>은 ‘그놈의 문학병’을 버리지 못한, 문학병을 업으로 삼고 있는 11명의 이야기이다. 그림책 작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서평가, 문학잡지 편집자 등 문학을 중심으로 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솔직하고 성실한 마음들이 기록되어 있다. 작업 방식과 태도, 실생활과 문학의 접점, 그리고 생계로서의 문학 등 평소 작가들에게 궁금했으나 쉽게 알지 못했던 은밀한 부분들이 문답 형식으로 제공된다. 분야는 다르지만 문학을 공통분모로 두었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웃다가, 홀로 짠해져서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는 시인은 아마 없을 거예요…. 시로는 돈을 벌 수도 없고,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목적으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시작부터 알고 있으니까”.

“학생들에게 이런 농담을 해요. 빌딩이 있는 사람이 희곡을 쓸 수는 있지만 희곡을 써서 빌딩을 살 수는 없다고”.

박준 시인과 극작가 고재귀의 말이다.

인터뷰집의 11명의 작가들은 같은 질문에 대해 같은 대답을 한다. 필자 역시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작가들이 서 있는 냉혹한 현실이니까. 그럼에도 이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한 것은‘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은연중에 바라는,‘문학해도 된다’는 답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마음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는 삶은 언제쯤 도래할까. 그것은 문학하는 마음들에겐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까.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지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학생의 질문은 다시 필자에게로 돌아와서 여러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소설을 쓰고자 하는 그 마음이, 그 길에서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삶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살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병을 앓는 마음들을 응원하는 건 소설가 최은영의 저 고백이 진심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삶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그것만으로도 문학은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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