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빈 (신문방송학 15)

f(x)와 카라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따로 찾아 듣지 않아도, 점심시간이면 학교 스피커에서 그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들리면 나와 친구들은 숟가락을 들고 춤을 췄다. 후렴구가 나오면 밥알을 씹다가도 다 같이 떼창을 했다. 그 시절 그들은 우리에게 꽤 각별한 존재였다. 언제 어디에서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했으니까. 길을 걷다가도 리듬을 타게 했으니까. 누구나 품속에 동경을 하나쯤 안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나도 나이를 먹고, 그들도 나이를 먹어 우리는 모두 일상을 견디는 성인이 되었다. 견디고 버티는 건 싸움과 닮아 있다는 걸, 내가 ‘여자’임을 각성하면서 배웠다. 동경은 어느새 동질이 되어 있었다. 설리가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서 연일 ‘논란’이 되었고, 그즈음 나도 브래지어를 버렸다. ‘구하라 동영상’(여기서 다시 언급하는 것조차 죄스럽다)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고, 그 여름 나는 혜화역 바닥에 앉아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찍지도, 보지도, 올리지도 말라고. 너무나 달라 보였던 그들의 삶과 내 삶이 서서히 겹쳐지고 있었다. 우리가 여자로 여기에 왔기 때문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남자 연예인들은 이제 범죄자가 되었고, 여자 연예인들은 죽었다. 전자는 추억을 오염시키지만, 후자는 마음을 부순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는 진부한 명제를 끌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 죽음의 배경을 너무나 잘 안다. 지난달 8일에 열렸던 여성연구소 심포지엄 <젠더폭력과 페미니즘>은 설리 추도사로 시작됐다. “슬픈 만큼 오래 기억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2주 뒤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구하라 추모 집회가 열렸다. 추웠고, 눈물이 지나간 자리에 자꾸 바람이 일어서 뺨이 에는 것 같았다. 우리 삶에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추도가 있을까. 있어야 할까. 자꾸만 내 곁의 여자들이 떠올랐고, 이런 식의 헤어짐을 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어 터질 것만 같았다.

바르트는 <애도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소리 없는 것. 여러 절규가 오가는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나는 그게 무엇인지 느꼈다. 그건 분명 공통의 감각이었다. 혹자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했다. 이 거대한 상실 앞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뒷짐을 진 채 뻔뻔한 얼굴로 잘도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우리는 타인의 흐느낌과 끊임없이 공명해야 한다. 다른 이의 고통과 상처에 계속해서 연대해야 한다. 공통의 문제를 응시하려는, 두려움에 찬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들려오는 부음 앞에서 ‘해야 한다’로 끝나는 당위의 연설들은 왜인지 무력해 보이지만, 어쩔 도리 없이 희망은 절망 속에서만 배태된다. 

망각이란 없다. 이 상실은, 슬픔은, 괴로움은 잊히지 않는다. 우리 안에 소리 없는 어떤 것이 자리를 잡아간다. 그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소리치게 하며, 마지막에 가선 분명 판을 뒤집는다.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안미옥, <생일 편지>) 이 말을 우리에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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