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한문학) 교수

<한비자>에 전하는 이야기다. 코끼리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코끼리의 뼈를 보고 머릿속으로 코끼리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려내었다. 너무도 기형적인 코를 가진 짐승을 제대로 그려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신이 그린 코끼리가 진짜 코끼리라고 우길 뿐이었다. 이른바 ‘想象(상상)’이란 말의 유래로 알려진 이야기지만, 나는 이를 확증 편향의 우화로 읽는다.

확증 편향, 쉽게 말하자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인식 프레임을 갖고 있다. 선천적인 자질에다 자신이 겪었던 학습과 경험이 쌓여서 이뤄진 것으로, 하나의 세계관이고 가치관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런 점에서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고유의 심리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개인적 심리로 인하여 타인의 존엄이 모독을 당하고 파괴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골방에서 혼자 좋아하는 것을 보든 말든, 이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만 제3자의 자존을 훼손하거나 파괴한다면,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된다. 마치 방 안에서 혼술하던 사람이 밖으로 나와 운전을 하다가 무고한 사람을 치어 죽이는 것과 같다. 즉 확증 편향으로 인한 타인의 인격 모독과 자존 파괴는 일종의 살해이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속물적 경영 판이든, 난잡한 정치 판이든, 고상한 인문 판이든, 숭고한 종교 판이든,  인간사 어디서든 벌어지곤 하는 일들이다.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그에 동조한 이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인간의 심리가 다 그렇지 뭐!”

이렇게 확증 편향을 공유하며 하나의 무리가 된 그들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족한다. 이 순간, 지성을 그토록 찬양해 마지 않았던 우리의 이성은 마비되고 섬세한 감성도 무뎌지며, 어느새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그냥 묻어두고 사는 거지’라며 이익을 나눠 먹는 변태적 편안함 속에서 느긋함을 즐기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 편향된 심리를 정상으로 간주하며 아슬아슬한 활공을 시작한다.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비상을!

나는 우리 대학을 횡행하는 다섯 가지의 병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의심, 둘은 시기, 셋은 편견, 넷은 이간질, 다섯은 무기력. 모두 확증 편향이 낳은 질병들이다. 그럼 치유는 가능한가?모르겠다. 허나 생각나는 대로 당부의 말은 몇 가지 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은밀한 단톡방을 삭제하라. 그곳은 관음적 페이크 뉴스의 배양소다. 둘째, 사실만을 말하고 들으라. 신뢰를 위한 최소한의 윤리다. 셋째, 공부하고 연구하여 증명하라. 넷째, 속살대는 사람을 멀리하라.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섯째, 단편적 지식을 믿지 말라. 여섯째, 손으로 기록하라. 기억은 불완전한 퍼즐이다. 일곱째, 인간의 선의를 존중하고 사랑하라. 이는 아주 중요하다. 어떤 행위를 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 감정적 분노를 터트리기에 앞서 그가 왜 그렇게 했을까를 생각하고 그에게 물으라. 여덟째, 타인의 불의에 성내되 그를 용서하라. 그가 내게 화해를 요청하지 않았어도 용서하라. 나를 분노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기 위해서이다. 아홉째,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하염없이 나의 길을 가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면 된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여하간 확증 편향은 극한의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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