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갖가지 모순과 갈등이 대학인의 삶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때로는 더욱 첨예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그러하기에 대학은 우리 사회 문제를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표본 집단이며, 또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다양한 가설들을 도출하고 검증해보는 하나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위계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과 개인의 권리와 개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문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며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갈등은 우리 대학에서도 매일같이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다. 한 사회의 문화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생활 방식일진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익숙하거나 지향하는 문화가 다르니 이 얼마나 혼란하고 힘든 시기인가? 그러나 이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학인들은 어렵더라도 이 갈등을 풀어내고 보다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문화를 정착시킬 소명이 있다. 어떻게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 나타난 문화의 종류와 변천을 개인-집단주의, 수직-수평적 관계 차원에서 연구한 그리스의 문화심리학자 트라이언디스(Triandis)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수직적 집단주의가, 산업사회에서는 수직적 개인주의가 발달하며, 현재보다 풍부한 재화가 존재하며 개개인의 인권 의식이 높아진 미래 사회에서는 수평적 개인주의 문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도 수평적 개인주의 문화가 자리 잡기를 원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와 대학에서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각자가 예측하는 미래의 상황이 다르고, 이로 인해 개인의 권리에 대한 생각과 문화적 지향점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의 공유와 소통이다. 현재 대학의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문제들을 풀어가는 소통 방식에 있다. 소통 방식은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기에, 위계적 집단주의 문화가 익숙한 사람들은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고수하며, ‘이심전심’이란 성어처럼 정확한 정보전달 없이 자신의 의도를 청자가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제 더 우리 사회에서 효과적이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서 개개인의 권리와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사소통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같은 생각을 갖지 않는 것, 즉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꺼이 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 과정에서 최대한 상대를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그 과정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를지라도 합의를 만들어가며 함께 살아갈 방법이다.  

건강한 대학이란 스스로의 문제를 구성원들의 힘과 노력으로 풀어나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대학이다. 우리 대학에 다양한 수평적 의사소통의 장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대학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 길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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