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성결대 연극영화학) 교수

계급 차별, 성별 차별, 인종 차별, 지역 차별에 못지않게 나이 차별도 큰 문제여서, 젊은 배우들이 주인공인 젊은 감독의 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령한다. <겨울왕국2>, <신의 한수: 귀수편>, <82년생 김지영> 가운데서 칠십 대 감독의 <블랙머니>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여기에 흥행 순위 아래에 있지만 영화 마니아라면 가슴이 설렐 두 거인의 이름이 있다. 1942년생 미국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그리고 1945년생 독일 감독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 이 두 거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뉴아메리칸시네마와 뉴저먼시네마의 얼굴들이다. 같은 시대를 풍미하면서 ‘뉴시네마’를 기치로 기존 영화 문법에 대항하며 젊은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던 ‘앙팡 테리블(나쁜 녀석들)’이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연출한 <아이리시맨>에서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와 알 파치노(Al Pacino)의 역사적 콜라보를 실현했다. 그는 드 니로와 찰떡궁합의 서막을 알린 <택시 드라이버>(1976) 이후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3)과 같은 걸작을 남긴 후에도 열정은 식지 않아서 <휴고>(2011) 이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로 여전한 현역임을 입증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 마블 영화는 ‘시네마라기보다는 테마파크와 같다’고 주장하면서 젊은 마블 팬들의 대대적 저항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자신 같은 나이 든 감독에게 기회를 선사하니 감사하지만 동시에 씁쓸함, 이 두 감정이 드는 것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빔 벤더스는 독일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뒤 할리우드로 전격 스카우트 되어 건너가 <미국인 친구>(1977)와 같은 로드무비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인 그는 보장된 성공을 뒤로 한 채 할리우드 시스템의 꽉 막힌 프로세스를 힘겨워하며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파리 텍사스>(1984)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베를린 천사의 시>(1987)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 뉴시네마의 시대가 저문 후 벤더스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관찰한다. 쿠바 음악 열풍을 되살린 <부에나 비스터 소셜 클럽>(1999)이나 한 전설적 안무가의 정신적 깊이를 다룬 <피나>(2011) 같은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영역에서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헌신해온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런 그에게 로마 교황청이 프란체스코 교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의뢰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벤더스처럼 영화도 멋있고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있다. 그는 카메라 초점을 로드무비 속 유랑하는 젊은이에서 점차 진실의 기록인 다큐멘터리 속 현명한 노인으로 옮겨갔다. 영화사를 수놓을 <아이리시맨>의 위대한 드림팀의 활약을 TV나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 손해다. 긴 시간대를 다루는 만큼 세 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온전히 몰입해서 봐야 재미있을 뿐 아니라 역대급 콜라보를 극장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기쁨 또한 포기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을 지켜보며 관찰하는 다큐가 아니라, 그의 삶 안에서 자신에게 내려진 숙명 같은 신의 숙제를 푸는 한 인간을 보게 한다. 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말과 삶이 일치하며 인종, 국적, 종교, 문화를 초월해 세계에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는 보편적인 인간이자 따뜻한 세계 리더가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거장의 카메라는 그의 정신적 깊이를 꿰뚫는다. 치기 어린 영화들이 판을 치는 지금 영화계에서 진정 어른다운 영화를 보며 거장의 숨결을 느껴보는 즐거움은 극장으로 향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한때 영화사를 호령했던 68세대 감독들이 새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애처로움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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