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정(대기환경과학 19)

부대신문이라는 글자가 필자를 설레게 했다. 무료했던 대학 생활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 같았고, 학과를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대신문 수습기자 모집 광고를 본 건 마치 운명인 것 같았다. 신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신문사 생활이 걱정됐지만, 자신감은 잃지 않았다. 면접 질문에서 취재원으로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괜찮냐는 질문에 해맑게 “네!”라고 대답할 정도였으니. 

면접 때의 자신감과 달리, 입사 초기 필자는 편집국에서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첫 기사였던 속보부터 삐거덕거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학생취재가 필요하다는 데스크의 지시로 필자는 무작정 학교 안을 서성거려야 했다. 다들 이어폰을 낀 채 바쁜 걸음을 하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게 했다간 큰일 날 것만 같았다. 무작정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매몰찬 거절이었다. 수차례 거절을 당하면서 필자는 학생 취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 트라우마로 인해 필자는 취재가 두려웠다. 그리고 이 두려움이 필자를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데스크에서 필요하다고 말한 취재만 ‘적당히’ 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전화 인터뷰마저도 모든 상황에 대한 대본을 다 작성해야 했다. 이 시기에 필자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무섭다”였다. 취재가 무서웠다.

두려움 속에서 기계적으로 신문사 생활을 하던 중 1면 탑 기사를 작성할 기회가 찾아왔다. 신문사 동기들 한두 명씩 탑 기사를 장식하는 것을 보며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초조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아 군더더기 없이 잘 해내고 싶었다. 처음으로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인터뷰를 위해 직접 찾아온 필자를 환영하며 자세히 이야기해주던 취재원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사를 위해 아침부터 학교 이곳저곳을 쏘다녔던 이 날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취재가 부족해서가 아닌 취재한 내용을 다 싣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신문사에 처음 들어올 때 선배들이 취재 200%를 해도 기사에 100%도 담기 힘들다고 했던 말을 필자는 그때서야 이해한 것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두려움은 점차 사라졌다. 거절당할까 무서워 마냥 소극적이었던 필자는 이제 거절이 두렵지 않았다.

필자는 이제 ‘깡’이 생겼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마주친 두려움이 첫 학생취재 때의 필자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매주 기사를 작성하면서 ‘수동적인 나’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취재의 두려움은 기사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기자가 될 지금, 더 잘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고, 부족한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족함을 채워 만족하기 위해 부딪히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깡’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신문사 생활 속에서 이 ‘깡’은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다. ‘나’는 이제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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