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뮬리가 어지러이 피어 있는 들판,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잿빛 뮬리는 옷이 가리지 못해 맨살이 드러난 곳을 간지럽게 한다. 목덜미, 팔의 모든 부분, 쉬폰 스커트가 닿지 않는 발목과 발등으로 얌전한 동물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눈을 감고 바람이 내 머리칼을 스쳐 헝클어트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잿빛 뮬리가 한가득 피어 있는 이곳에서 나는 내 육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부위에 신경을 집중하면 다른 부위에 느껴지는 것들을 잊을 수 있다. 내 발 밑에 있는 시원한 흙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상상하며 어릴적에 흙투성이가 되도록 장난치며 배운 감촉을 떠올리면 나는 진흙속에 파묻혀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많은 뮬리 중 한 줄기를 꺾어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짐승의 모가지같이 얇은 뮬리 줄기를 두 손으로 쥐고 양쪽으로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이 따위 것은 전혀 뽑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단단한 식물을 양쪽으로 흔들던 도중 나는 갑작스런 위화감을 느꼈다. 이깟 식물 따위를 내 집에 두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칼로 베어낼 수도, 톱으로 절단해낼 수도, 간단하게 기술자를 불러 뿌리 채 파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뮬리를 가지고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낀 것은 단순한 물리적 이유가 아니다. 나는 두 손 가득 움켜쥐고 있는 이것을 가질 수 없다. 언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결정된 것이며 그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이 식물은 바람에 날리며 서로에게 엉키고 설켜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이 뮬리밭에서 나는 나의 육체와 감정을 제외한 그 어느 것에도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끝없는 무력감과 소외감이 나를 덮쳐 휘청이게 했다. 방금까지 시원했던 진흙은 축축하고 질퍽했으며 산들바람은 내 뒷목과 등줄기를 훑어 나를 소름 돋게 했다.          

Sunday is gloomy,
My hours are slumberless
Dearest the shadows
I live with are numberless

나는 알람 소리에 번쩍 눈을 뜨고 숨을 골랐다. 주먹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바닥에 빨간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방금 내가 서있었던 뮬리밭은 내 꿈에 불과했지만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와 달리 남편은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을 오려 붙인 것처럼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너무나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남편이 낯설어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남편의 따뜻한 체온은 곧 떨리는 내 몸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남편이 내게 줄 수 있는 위로는 여기까지이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더 있던지 간에 내가 남편에게 이해나 공감 따위의 감정을 바라거나 간밤에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편은 성실하고 가정적이나 가끔 잔인할 정도로 무던한 부분이 있는 남자이다. 그는 크게 힘든 시기 없이 무난한 삶을 살았고 목표의식이나 욕심을 가지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빼어난 점은 없어도 남편감으로 딱히 흠잡을 거리 또한 없는 사람이다.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을 삶의 이유로 삼는 나와 확연히 다르다. 대학 선배였던 남편은 교양수업을 듣던 강의실에서 만났다. 다부진 체격이라는 점 외에 딱히 관심이 가는 점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남편의 생각은 조금 더 호의적이였다. 남편의 가벼운 호감표시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남들 만큼의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이상적이다 싶을 만큼 높은 목표가 있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깊은 사이로 발전되기 전에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 후 높은 목표를 가진 남자들과 몇번의 연애를 통해 배운 것은 그런 부류의 남자들은 대개 자기애를 바탕으로 한 고집이 세고 공적인 일 이외에 어떤 분야라도 나에게 지기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계속해서 실패한 로스쿨 입시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2번째 로스쿨 입시에 실패했던 시기에 애인에게 실연을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때문에 타이밍 좋게 연락이 닿은 남편은 다른 남자들에게 받지 못한 색다른 안정감을 주었다. 내 기를 꺾지못해 안달이 난 남자들과는 다른 남편에게 전과 다른 호감을 느꼈다. 남들 만큼의 연애기간을 거친 뒤 그의 담백한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결혼 후 나는 로스쿨 입시에 두차례 더 낙방했고 단 한번 피임을 하지 않은 날에 덜컥 아이가 생겨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게 되었다. 생각없이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하던가. 그 글의 요지는 능동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겠지만 요즘의 나는 차라리 사는 대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고 느낀다. 내가 나의 가정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만 주의를 쏟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해 잊기 위해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외의 일은 꿈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하듯 사고의 절반 이하를 사용하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

간단하게 남편의 아침식사를 챙긴 뒤에 남편을 배웅하며 작별의 키스를 나누었다.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실하는 형식적인 절차이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남편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이 장면이 뻔한 삼류 영화의 오프닝 같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저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있다. 하지만 이렇게 멍하니 공상에 빠져 있는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둘러 아들을 깨워 유치원에 갈 채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6살임에도 크게 칭얼대는 법이 없는 아들은 어딘지 모르게 남편같은 무던함이 있다.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면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빈 집에 남겨진다. 나는 대부분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지인을 통해 소일거리로 받은 변역일을 한다. 결혼 전까지는 내 오랜 취미인 독서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로스쿨 입시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현재에는 지식의 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사색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그만두고 가볍게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스포츠로 시간을 죽인다. 피트니스 센터에 가기위해 세면도구를 챙기고 있던 찰나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원장의 전화였다. 원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스쿨버스 기사에게 급한 사정이 생겼으니 직접 아이를 데리러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연신 반복해서 사과를 반복하는 원장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동네에 있는 아이들 몇 명의 하원을 도와주겠다고 대답했다. 원장은 충분한 감사를 표한 뒤 학부모들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원장에게 받은 번호로 학부모들과 연락하며 아이들을 하원시킬 곳을 메모했다. 혹여나 길을 헤매면 어쩌나 싶어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보다 몇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으나 생각 외로 아이들의 하원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난 뒤에도 한참의 여유가 있었다. 시간이 붕 떠버린 탓에 오랜만에 드라이브라도 할까하던 찰나에 모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천천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모친은 다정한 투로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 내용은 대개 식사는 제 때 챙겨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은 다음 아이와 남편의 안부를 물어오는 식이였다. 모친은 나의 남편과 많이 닮았다. 그들의 생물학적 성이나 나와의 관계를 제외하면 그 둘을 구별해내기는 퍽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면 별 생각 없는 남편과 다르게 나의 모친은 성공에 대해 막연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말을 들으며 성공에 대한 두려움을 학습했다. 내가 모험을 하겠다고 예고할 때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것이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우며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모험을 끝까지 해냈음을 강조하는 것이였다. 내가 다니던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인이 아닌 법조인이 되고자 재수를 하겠다고 할 때에도 당신은 봄날처럼 따스한 말씨로 나의 실패를 예견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로스쿨 입시를 포기하라던 남편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내 가족에 대한 질문이 끝났음에도 나는 당신도 식사는 하셨는지 요즘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모친은 “아직도 로스쿨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지? 지금 네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감사하렴. 때가 지나고 나서야 행복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단다.” 라고 말했다. 무언가가 목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있는 느낌이였다.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지키고 유지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남편과 닮은 어머니를 보고있자면 나와 그들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듯한 이질감이 든다. 가본 적도 없는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당한다면 딱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나는 모친과의 통화를 그만두고 싶었다. 목구멍에 있던 무언가가 뱃속으로 넘어가 나를 찌르는 듯했다. 아직 아이의 하원시간까지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지만 나는 모친에게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찝찝한 기분을 잊기 위해 돌린 핸들은 나를 달갑지 않은 장소로 데려다 놓았다. “의정부 지방법원이 여기였었지..” 한 때 법조인을 꿈꾸며 재판방청을 하러 오던 법원이다. 법원건물을 보고있자니 과거에 방청했던 재판 중 하나가 스치듯 떠올랐다. 재판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한 중년의 남성은 사건 이후, 한평생 해오던 택시기사 일은 둘째 치고 성인남자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무서워졌다고 증언했다. 택시기사의 편에서 그를 옹호하는 검사를 보며 나도 언젠가 꼭 저자리에 서서 약자를 보호하는 유의미한 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법원 주차장으로 차를 돌렸다. 이런 곳에 재미붙이지 말라며 핀잔을 주던 젊은 경비원 대신, 지루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한 중년의 경비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소지품을 갑판위에 올려놓아주십시오.” 헐렁한 청바지에 체크셔츠를 입은 앳된 모습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이 꼭 추가되었는데 이제는 법원에 들락거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 같아 주책맞게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법원 복도를 가로질러 건물 가장 안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 긴 복도 끝에 다다르면 반짝이는 눈을 한 내가 영화처럼 오늘의 사건목록을 훑고 있을 것만 같다. 만약 정말로 이 복도 끝에 과거의 내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과거의 나는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닌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네야 할까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일러주어야 할까. 아니면 행복한 공상을 하게 내버려두고 늙은 나는 뒤돌아 도망치는 편이 나을까. 쓰잘 데기 없는 상상을 마쳤을 때, 나는 이미 한 재판장에 들어와 앉아있었다. 사건목록을 확인하지 않고 들어온 탓에 재판의 주제는 알지못했다. “방청석에 앉아 계신 분은 재판과 상관없는 분이신가요?” 판사와 검사, 변호사와 피고인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해 쏠렸다. 갑작스러운 판사의 질문에 잠시 재판장에 정적이 흘렀다. “아, 그렇습니다.” 짧은 대답이 끝나자 한번 더 나를 흘깃 바라본 변호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볼 것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던진 관심을 거두어들였다. 방청석에는 어린아이 둘과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재판은 보이스피싱 사기와 관련된 내용이였다.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이라 방청객도 없을 터인데 혹시 변호인 쪽에서 준비한 증인이 참석한 것인가 싶어 질문한 것 같았다.  “피고인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사기혐의인 것을 알고 있었지요?”  “네..” 국선변호인인 듯 싶은 살찐 남자는 본인의 의뢰인이 무어라고 대답하든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이끄는 데에는 통 관심이 없어보였다. 차라리 저녁메뉴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걸맞아 보였다. 혐의가 명백히 밝혀진 범죄였기에 범행사실과 인지유무를 묻는 검사의 질문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여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앳되어 보였다. 쑥대밭이 된 머리에 얼마나 울었는지 벌건 눈을 한 여자는 자신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변호인, 최후변론 진행하세요.” 판사의 말이 끝나자 저녁메뉴를 미처 정하지 못한 표정의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 피고인의 남편은 임신한 상태의 피고인을 두고 다른 여성과 살림을 꾸리기 위해 집을 떠났고 현재 완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피고인은 남편에게서 어떠한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갓난 아이였던 둘째 아이를 봐줄 사람을 고용할 금전적 여유가 없던 피고인은 근무시간의 제약 때문에 쉽게 일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수차례의 실직 끝에 피고인은 신문 구인 광고란에 적힌 자택근무 가능이라는 단어를 보고 광고에 적힌 번호에 연락을 했으나 아시다시피 그곳은 보이스피싱 사기 단체였습니다. 피고인은 그 단체에서 준 매뉴얼대로 전화를 돌렸을 뿐, 사기 목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보이스피싱의 막대한 수익에서 피고인에게 떨어진 것은 한 달치 월세조차 낼 수 없는 20여 만원 남짓이였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인 제 피고인은 현재 재판장에서 재판을 받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재판장님의 선처 부탁드립니다.” 변호인은 사건의 전말을 간략히 요약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하십시오.” 아무런 동요없는 판사의 말에 목이 떨어질 듯 바닥만 보고있던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한 글자씩 힘겹게 뱉어 냈다. “천천히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얼핏 들으면 피고인을 위로하는 듯한 투이지만 그저 피고인의 불분명한 발음에 곤란한 표정을 짓는 서기를 돕는 의도에 가까웠을 것이다.  “아이아빠가 우리를 버리고 간 이후로 먹고 입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평범한 정보전달이 아닌 것은 인지했지만 제가 저지른 것이 그렇게 큰 범죄였다는 사실은 맹세코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할 당시에도 다른 소일거리를 병행하였지만 아이들에게 변변한 옷가지 하나 사주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감옥에 가면 친인척 하나 없는 아이들은 거리에 나앉게 됩니다. 벌금형을 내려 주신다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꼭 갚겠습니다. 판사님 제발 아비에게도 버림받은 불쌍한 제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한번만 선처해주시길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이 해야 할 말은 사실 변호인이 변론 중에 했어야 했고 판사가 한 말은 변호인의 말을 반론할 때 검사가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재판을 수도없이 겪었을 저들에게 한 명의 피고인은 딱히 특별한 관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의 형식 따위를 지켜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 싶었다. 저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중대한 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있기에 어느 순간 그 중요성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피고인의 말이 끝나자 판사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방청석이였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피고인의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 안은 채로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의 재판장에서 해진 죄수복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잘못을 빌고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 자체가 저 어린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신들의 세상에서 신과 같은 어머니는 지금 만신창이가 되어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에게 무언가를 애원하고있다. 하지만 재판장에 있는 누구도 어머니를 도울 생각은 없어보이는데다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통해 저 아이들은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있다. 저 어린 것들에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비춰질까. 정의와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법조인이 저 아이들에게는 그저 구역질날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판사의 ㅤㅍㅑㄴ결은 이 가슴 아픈 사연에 정점을 찍는다. “피고인이 보이스피싱을 하고있으면서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피고인의 안일한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젊음을 바쳐가며 모은 큰 돈을 잃었습니다. 그들도 피고인과 다른 바 없이 힘겹게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이였을 것 입니다. 때문에 피고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형벌을 내리지 않거나 감형할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피고인에게 징역 2년 2개월을 선고하며 10일 후에 최종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탕.탕.탕 굵은 마찰음이 재판장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판결에 쓰인 어려운 단어를 알지못하지만 어머니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고 지레 결과를 짐작했으리라. 기어코 터져버린 아이들의 곡소리를 배경으로 재판은 끝이 났다. 한 사람의 인생이 10분 남짓한 시간에 결정되었다. 저 가엾은 아이들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 서둘러 법정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차문을 열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내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을 들은 것이 오랜만인데다 아직 재판의 여운이 남아있던 터라 순간적으로 ‘내 이름이랑 똑같네’하고 넘겨버렸다. 운전석에 타 시동을 거는데 낯선 주먹이 창문을 두드렸다. 방금 전 재판장에 있던 변호사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창 밖에 서있는 남자를 넋놓고 바라봤다. “혹시 부산대 법학동아리 41기 한 적 없어요?” 바람에 앞머리에 머리칼이 날리는 바람에 드러난 작은 흉터가 낯익다. “선배?” 그의 눈이 휘어지며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

커피를 내리는 주방을 제외한 세 면이 모두 통유리로 된 카페에 앉아 커피와 간식거리를 주문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고있자니 자꾸만 학창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학부 때의 선배는 주짓수 동아리라면 모를까 법학동아리와는 썩 어울리는 데가 없는 사람이였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술자리와 여색을 즐기는 성격과는 별개로 동아리 활동에 하는 조별활동에 종종 연락없이 불참하고 사과한마디 하지않는 불성실한 모습 때문에 딱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있지도 않은 터였다. 동아리에서 단체로 가는 봉사활동에서는 참석한 줄도 몰랐는데 단체사진을 찍을 때 불쑥 튀어나와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곤 하는 사람이였다. “어떻게 지내?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냥지내죠 뭐, 아이 유치원 데리러 가다가 옛날 생각나서 잠깐 와본거에요.” “아까 법정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너 학교다닐때도 동아리 토론시간에 잘했었잖아, 얼마전에 동기놈 만나서 네가 로스쿨 포기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의외더라. 나는 몰라도 너는 꼭 법조인이 될 것 같았는데.” 내 생각도 그렇다. 도대체 왜 간절했던 나 대신에 이 한량 같은 선배가 국선변호사 타이틀을 달고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는다.  “입시가 길어지기도 했고 중간에 아이가 생겨서 더는 입시를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아 참, 아까 재판에서 피고인이 감옥에 가면 아이들은 보호시설에 가는거에요? 피고인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변변한 친인척도 없는 것 같던데” “뭐 알아서들 하겠지. 그러게 왜 애가 둘이나 있는 부모가 그런 짓을 해가지고, 솔직히 몰랐다는게 말이 되냐? 힘든 일 하기 싫으니까 편한 일만 찾다가 그 꼴 난거지.” 피고인이 식당일을 하다가 몇번이나 쓰러져서 부른 응급실 비용을 지불하는데 한 달치 생활비를 날린 적이 있어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기가 두렵다는 진술을 듣고도 저렇게 말하는 것일까. 자기는 대학시절부터 요일마다 다른 외제차와 명품 컬렉션을 자랑하는 맛에 학교를 다녔으면서 생활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을 생각을 하라고 말하는 철없는 사람에게 국선 변호사라는 직책을 맡겨놓으니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수준의 주옥 같은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발언은 루머이기라도 했지. 내가 한 평생 그려왔던 직업을 가지고 이딴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꼴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라에서 받은 월급으로 내 앞에서 만원이 훌쩍 넘는 커피에 빨대로 바람을 불어넣으며 장난을 치고있는 이 철없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선배는 왜 법조인이 된 거에요?” 그나마 처음에는 정의에 티끌만한 관심이라도 있었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살찐 변호사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본인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학부때는 말 안했는데 우리 아빠가 시의원이거든, 교육 쪽 장관직에 항상 욕심이 있으셨는데 자식들이 변변치 못하면 자기집 자식교육이나 똑바로 하라는 말이 나올께 뻔하니 자기 앞길 막을까봐 존나게 걱정하더라고. 솔직히 로스쿨 들어갈 때 아빠 인맥도움도 살짝 있었고. 난 사실 내일 당장 변호사를 그만둬도 상관없어. 근데 우리 아빠가 이게 좀 있어서 지원은 꼭 받아야하거든. 나는 아빠한테 빵빵한 용돈 받아서 좋고 아빠는 자기가 꽂아 놓은 로스쿨 출신 엘리트 자식으로 성공한 교육자부모 이미지 뽑아서 좋고 서로 윈윈인 거지.” 선배는 사극에 나오는 간신배같은 표정을 지으며 집게손가락을 접어 동전모양을 만들어 내 쪽으로 흔들어 보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가할 수 없는 위치라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내가 로스쿨 입시에 계속 실패해온 것을 알면서 아빠 빽으로 로스쿨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잘도 지껄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오장육부를 뒤집는 소리를 하면서도 몸매 좋은 여자들의 SNS피드를 훑는 저 손가락을 모두 부러트리고 싶었다. 더 있으면 저 사람에게 어떤 해를 가할지 확신할 수 없어진 나는 아이 하원시간에 늦었다며 쫓기듯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며 앞창문으로 자리에 남아있는 선배를 쳐다보니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도드라진 굴곡을 가진 여자들의 SNS를 훑으며 왼손으로는 내 커피잔의 립스틱이 묻은 부분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다 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마자 속에서 무엇이 울컥 올라와 근처 상가의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아침에 먹은 것들을 모두 게워냈다. 그 이후의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 들러 몇몇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만들어 준 뒤, 평소보다 늦게 귀가해 피곤해하는 아이를 잠자리에 들게 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고 해도 남편의 귀가시간보다는 빨랐고 아이는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알지 못했다. 남편은 오늘도 내가 집에서 번역일을 하다가 약간의 스포츠를 즐기고 온 것으로 알 것이다. 나는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오늘 특별히 말수가 적고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남편은 식사내내 앞에 앉아있는 나의 상태 변화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오랜만에 남편이 반주를 제안하는 걸 보면 자신의 이야기에 별다른 의견없이 잠자코 웃기만 반복하는 내가 남편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건 오늘밤 부부관계를 가지자는 신호이다. 나는 그것에 응했고 잠깐만이라도 구역질나는 오늘의 일을 잊고 싶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관계에 임했다. 선배와 만난 이후로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내 안에는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재해가 불어 닥치고 있었으나 나의 가족들은 아무도 나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했다. 나에게 안색이 안 좋은 것 같다는 걱정의 말을 건넨 유치원 원장에게 감사의 표시로 떡이라도 돌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매일밤 나는 남편의 품에 안겨 지긋지긋한 두통과 싸워야 했다. 

***

끔찍한 스트레스가 익숙해질 무렵의 나는 평소와 같이 남편과 아이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남편에게 배웅의 키스를 한 뒤 아이를 유치원 버스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마루와 부엌사이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마루와 부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 애매한 잉여공간이 지금 나의 상황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 나를 가만히 둘 수가 없어졌다. 나는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겨 아파트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나는 원래 하루에 한 가지 종목의 스포츠를 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동아리 선배를 만난 그날부터 나는 멍하게 있는 상태를 극도로 회피했다. 항상 목구멍이 쓰려올만큼 숨이 차도록 나를 몰아세웠다. 원래의 운동량도 적은 편은 아니였지만 평소 운동량의 두배 가까이 양을 늘려도 성에 차지않아 개인 테니스 레슨까지 끊었다. 대회에 나갈 생각이라고 말해 두었기에 열정적인 코치는 기꺼이 나를 혹사시켜 주었다. 번역일을 주던 지인에게는 번역일을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으니 일을 더 많이 줄 것을 부탁했고 남편과 잠자리를 가진 후에도 남편을 재우고나서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번역일을 했다. 잠을 제때 자면 선명한 컨디션으로 낮시간을 온전히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수면시간을 두시간 이내로 줄였다. 그렇게 나의 하루를 얼핏 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런 생활을 3개월가까이 반복하던 어느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설거지를 하며 번역을 맡은 추리소설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서둘러 마지막 그릇까지 설거지를 마치고 뒤돌아 서는 순간 앞치마로 싱크대에 세워 놓은 식기 하나를 건드렸고 차례로 얹어 놓은 식기들이 도미노처럼 바닥에 꽂혀 박살이 났다. 영화의 단골 클리셰처럼 식기들은 말도 안되게 박살이 나버렸다. 깨진 유리 파편은 내 발목에 상처를 내었고 검붉은 피가 흘렀다. 태평하게 번역업무나 생각하던 방금전과 너무도 달라진 상황에 나는 그 자리에 굳은 채 가만히 멈춰 서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 멋대로 산산조각이 난 식기를 빤히 보던 나에게 점차 이유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져 부엌에 주저앉아 갓난아이처럼 울다가 흐느꼈다가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맡은 역할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가고싶은 쪽으로 가버린 파편들을 보고 있자니 나를 짓누르고 있는 무언가에 천천히 생겨나던 균열이 마침내 본체를 쫘악 갈라버린 것 같았다. 파편은 꽤 멀리까지 튀었을 것이고 청소를 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파편에 발이 찔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주저앉아 장식장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마치 억지로 주부역할을 떠맡은 배우처럼 보였다. 새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조선시대 거지역할을 하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들어 나는 즉시 안방에 있는 전신거울로 달려가 걸친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나의 몸을 구석구석 훑었다. 꾸준한 운동덕분에 나의 몸은 생기가 돌다 못해 넘쳐흘렀고 허리와 목선, 쇄골과 골반에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곡선이 도드라졌다. 처녀시절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다. 내 몸을 구석구석 감상한 후에는 거울을 마주보았다. 거울에 비친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 것은 여고생시절, 거울에 비친 자신을 계속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면 미쳐버린다는 괴담을 들은 이후로 처음이다. 내 눈은 끊임없는 욕구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다시 로스쿨 입시에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몇번이고 낙방했던 로스쿨 입시가 한번에 될 리 없다. 나는 혼절할 것 같은 정신을 붙잡고 모든 학교의 로스쿨 입시요강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넘겨버렸지만 5년 이상의 의료인으로 일한 기록이 있다면 로스쿨 우대사항에 포함된다. 나는 전적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간호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그 때는 눈앞에 있는 목표를 쫓는데 한시가 급했기 때문에 간호사로 5년을 근무하는 것은 나의 선택지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이도 남의 손의 맡길 수 있을 만큼 자랐고 동네병원은 출근시간이 늦고 퇴근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주부인 나도 충분히 근무할 수 있다. 그리고 틈틈히 법학적성시험과 토익시험을 준비한다면 로스쿨 입시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두 손 모두 놓고 미쳐가는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로스쿨 입시를 포기한 이후 잃어버린 안식을 되찾았고 몇달간 내 몸이 거부했던 졸음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나는 화장대 옆에 걸린 가운을 집어 입고 침대 위로 쏟아졌다. 나는 눈을 감았고 그대로 깊은 수면상태에 빠졌다. 꿈속에서 나는 온통 핑크빛의 뮬리밭을 걸었다. 나는 맨발인 채 였지만 나의 발은 상처 입지 않을 것이다. 가녀린 핑크빛의 뮬리는 나의 걸음이 닿는대로 길을 터주었다. 내가 전혀 힘을 주지 않고도 이 뮬리를 한손으로 들어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식물을 꺾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핑크빛의 뮬리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듯이 나 또한 내가 가고자 열망하는 곳을 향해 간다. 저 멀리 있는 황금빛 뮬리들이 내게 손짓하듯 온몸을 떨고있다. 가는 길에 잿빛 뮬리 더미가 다시 나를 붙잡아 축축한 진흙속으로 끌고가려고 해도 나는 끌려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나를 부르는 저곳으로 갈 것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