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 교수

한 남자가 방에서 죽었다. 아래 갈비뼈 깊숙이 가위가 꽂혀있었다. 방바닥에는 피가 낭자하고 주위에 반짇고리가 엎어져 바늘 실 골무 등이 너부러져 있었다. 술 냄새가 방안 가득 했고 여자는 넋 잃은 사람처럼 “제가 죽였어요”를 반복했다. 그 여자의 얼굴은 피멍이 가득했고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검찰은 살인사건으로 기소하고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형태로 심리를 진행하였다. 대부분 배심원들은 알코올 중독인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에 견디지 못한 아내가 저지른 우발적 살인사건으로 결론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한 배심원이 반대했다.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상급자들에게 죽을 만큼 집단구타를 당할 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이 여자도 술 취한 남편의 무차별한 폭력 앞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가위로 남편을 찔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방위다. 드라마 미스함무라비의 한 에피소드이다.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살인인가? 정당방위인가? 당사자만이 알고 입을 다물면 제3자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동한 것이라면 당사자도 모를 수 있다. 엄밀한 의미의 진실은 하나 밖에 없는데 대부분 명확하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의 후보는 여러 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후보들 중 하나를 진실이라고 추정하고 그것을 진실로 인정한다. 진실의 추정은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그런데 어떤 사실조합을 선택하느냐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의 추정은 달라지기 때문에 자주 평가자의 신념이나 가치관과 결부된다. 여기 에피소드에서도 죽을 정도의 폭력에 시달린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간의 진실 추정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진실은 사실 인정, 사실 기반 추론과 해석, 진실인정의 과정을 거쳐 추정된다.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거나 사회적 가치가 변화하게 되면 추정된 진실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더 어렵다. 당사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주 제한된 형태의 그들의 유물이나 기록만이 존재할 뿐이다. 기록자체도 기록자가 사실을 잘못 인식하여 기록하였거나 가치관과 신념에 따른 해석이 투영되었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로 모두 인정하기 어렵다. 역사가는 기록된 사실의 진위여부를 판별해야하고, 사실일 경우 기록자의 해석을 분리해야 하고,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자신의 해석을 통해 또 다른 진실을 추정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해석 간의 경계도 모호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역사가는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카(E.H. Carr)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하였다. 

모든 진실 추정의 필요조건은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의 존재다. 그래서 사실의 △은폐 △조작 △착오 △날조 △왜곡과 변조 등으로 그 객관성이 무너졌을 때 행해진 어떠한 추론이나 해석은 진실에서 배제된다. 이런 점에서 객관적 사실의 기반 없이 이루어진 무속인의 예언, 종교적 논리와 사회적 이념이나 개인적 신념 등은 진실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학문과 언론은 진실을 찾고 탐구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는 분야다. 현대는 정보통신기술과 온라인 미디어 발달로 거대한 자본투자 없이 ‘익명의 개인’들까지도 이 분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수많은 개인들 간의 경쟁은 진실 추구보다는 ‘재미’에 기반 한 이익추구나 자신의 신념 실현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이제 재미나 자신의 이익이나 신념 실현을 위해서 사실보다는 스토리텔링이 더 우선시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실은 쉽게 △은폐 △조작 △날조 △왜곡 또는 변조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스토리텔링도 진실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고 우기는 시대가 되었다. 5.18 북한군 개입설, 조국사태와 반일종족주의 등 의혹 수준에 기반한 수많은 스토리텔링으로 ‘위장된 진실’들이 비수처럼 사람을 찌르고 있지 않는가? 여배우 설리의 죽음처럼 우리도 ‘위장된 진실’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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