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 음악비평가

하루의 시작과 동시에 필자는 가장 먼저 핸드폰 알람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 외출 준비를 마치고 바깥에 나가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이제 막 올라온 자동차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는 온갖 차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뿜는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이어폰을 끼고 외부 소리와 차단된 나만의 소리공간을 만들기 전까지, 내게 들려오는 대부분의 소리는 기계의 소리다. 도시환경에 살아가며 많은 편리를 누리는 만큼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도시 특유의 ‘사운드스케이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 ‘소리 풍경’이라고 번역되는 사운드스케이프는 공간의 음향적 환경을 일컫는 말로, 보는 것을 전제하는 ‘풍경’이라는 개념을 듣기의 영역에도 적용한 것이다. 

개개인의 활동반경에 따라 각자가 인식하는 사운드스케이프는 무척이나 다르다. 필자의 경우, 현재 도로변에 거주하고 인구밀집지역을 주로 오가는 탓에 거의 늘 사람과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소리에 뒤덮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소리들은 도시 특유의 생동감을 전해주는 반가운 지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필자를 무척이나 성가시게 하는 소음이기도 하다. 종종 그 소리가 버거울 때면 귀마개를 끼고 최대한 소리를 차단하거나, 밤이 될 때를 기다려 고요함을 즐기거나, 조용한 녹지를 찾아가 자연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그러고 나면 도시의 소리 환경에서 누적된 피로감이 조금이나마 씻겨나갔다. 

최근 ‘귀높이’라는 행사의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김영은 작가와 윤민화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소리문화연구자 이승린과 소리를 주 매체로 다루는 몇몇 작가들이 함께한 이 행사는 미술계 안에서 소리에 대한 이해를 함께 더 높여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었다. 미술계라는 구체적 맥락이 있긴 했지만, ‘소리를 듣는 환경’을 되돌아보는 장이었던 만큼 이 토크에서는 미술관 바깥의 소리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언급됐다. 그중에는 오늘날 도시 환경에 온갖 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만큼 소리 또한 그 공간에 가득 차 있고, 이러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듣는 귀가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발언도 있었다. 소리 환경에 대한 이런 의견을 들으며, 필자 또한 주변의 사운드스케이프와 그 청취 경험을 곰곰이 되돌아보게 됐다. 가끔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매 순간 낱낱이 인지하지 못했지만 너무 많은 소리를 듣고 있을 때도 있었고, 소리를 듣지 않았을 때보다 많이 들었을 때 훨씬 더 피곤하다는 것을 분명히 감지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머무를 곳을 찾아야 할 때, 본능적으로 최대한 조용한 곳을 찾아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자각했다. 

몇 년 전 새롭게 등장한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 불리는 소리는 따로 전문 방송채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심리적 안정을 유도한다고 주장되는 이 ASMR 소리는 때로 ‘소리 힐링’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쓰이는 소리는 주로 물 흐르는 소리나 풀벌레 소리 등 △자연의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 등 보통은 아주 고요한 공간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작고 섬세한 소리다. 최근엔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EBS>라디오에서 ‘저세상 ASMR’이라는 이름하에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환경을 상정해 거기서 들릴 법한 편안한 소리를 만들어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편안한 소리를 찾아듣는 것이 지금은 꽤 일상적인 일이 됐지만, 문득 이런 소리를 따로 만들어 듣게 된 이유가 어쩌면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이 한계치를 넘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과 이어폰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귀를 막거나, 소리를 차단하거나, 다른 소리로 귀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이런 상황을 되돌아보며, 개개인이 귀를 막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계속해서 도시계획을 갱신해가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듯,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상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장기적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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