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청년들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아까워하며 작품을 음미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밀한 고백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고민의 깊이와 너비는 다소 달랐지만, 진정성 하나만큼은 어느 작품을 대하더라도 느껴지지 않는 게 없었다. 토로하고 있었고 아파하고 있었으며, 도무지 발설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비밀 하나를 조금이나마 엿본 것 같아 투고자들에게 미안했고 또한 감사했다. 모든 투고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올해 부대문학상 시 부문 투고작은 150편이었다. 작년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문청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양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언어화하고 있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팠다. 처단당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화자의 열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시는 열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작품이 많았다. 개인의 내면에 치우친 나머지, 우리들 삶의 조건들을 새롭게 성찰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희유했던 것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들은 빛이 났다. 그중 두 작품을 가려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벤자민의 죽음>을 당선작으로 삼는다. 이 시의 강점은 소멸과 죽음을 직시하는 시적 화자의 미더운 시선에 있다. 그것이 미더운 이유는 죽음에 대한 사유를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고, 끈질기게 질문하는 화자의 태도가 어조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분행과 분련을 깊이 있게 고민하여 시적 형상화한 점도 여실하게 눈에 띄었다. 더욱이 시의 마지막 연, “세계의 죽음이 한 겹/ 자라난 것 같았다”는 이 시의 백미를 이루는 표현으로, 죽음에 대한 끈질긴 성찰이 어떠한 인식의 비약을 가져오게 했는지를 진정성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선자의 다른 투고 시편들이 일정하게 고른 시적 성취를 보여준 점 또한 당선작으로 삼는 데 망설임이 없게 했다.

가작으로 뽑은 작품은 <고장 난 고양이>다. 신산스러운 일상을 낯설고 예외적인 것으로 형상화해내는 언어 선택 방식이 주목할 만했다. 대상 사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은 점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만 어조가 다소 고르지 못했고 구체적인 정황을 좀 더 보편적인 시선으로 조망해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같은 투고자의 다른 시편들에서 확인되는, 자기 성찰적 태도의 깊이 있는 형상화 방식은 진부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는 순간의 장르지만 또한 오랫동안 묵혀야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다가온 언어를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육화해낼 때, 시는 비로소 문자가 아닌 사물이 된다. 파토스에 취해 언어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해서는 자기 배설밖에 되지 않는다. 시는 발화지만, 또한 응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50편의 작품 속을 모험하면서 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떠랴. 서로 다른 150개의 목소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하늘은 조금 더 높아졌고 대지는 그만큼 넓어졌는데. 고군분투했을 모든 투고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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