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 기자
jisooandlog@pusan.ac.kr

소설 <광장> 속 주인공 이명준은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남한의 자유방임 사이에서 고뇌했다. 양국의 이념 대립으로 남쪽과 북쪽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중립국행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중립국에서 지독한 고독함을 느꼈다. 결국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그가 자결을 택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런 상황은 비단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탈북 후 우리나라에 온 북한이탈주민이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탈남한을 선택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이탈주민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여전히 탈북민이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정착하며 어떤 차별을 겪었냐’는 질문에 취재원은 한동안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회상하며 눈가가 촉촉해졌고 덤덤히 말을 이으려는 모습에 필자도 눈물이 고인 채 인터뷰를 진행해나갔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인데’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북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탈주민이 일반인과 다를 것이라는 편견을 은연중에 지니고 있는 듯하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식이 부족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말투가 다름을 눈치채고 그들에게 출신 지역을 묻는 경우도 잦다. 이에 탈북민들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으로 자신을 재단하는 게 두려워 신분을 숨기고 ‘강원도에서 왔다’거나 ‘조선족’이라고 답한다. 이는 특히 탈북민 자녀들의 학교생활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또래들이 자신과 다른 억양을 쓰는 아이를 집단에서 소외시킨다. 결국 아이들은 유년기부터 자리 잡은 내적 상처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된다. 탈북 아동뿐만이 아니라 취업 전선에 놓인 청장년층도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거절당하는 경우가 잦다.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서비스직에서도 이들은 배제된다.  

결국 탈북민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남한을 떠나고 있다. 희망을 품고 왔지만 이곳의 현실이 북한이탈주민에게 너무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이명준’은 이제 없어야만 한다. <헌법> 제11조에 따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역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거창한 법 조항이 아니더라도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럼에도 횡행하게 일어나는 사회적인 배제 속에서 이들이 존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자치 단체의 진심 어린 도움과 적극적인 정보 제공이 행해져야 하며 우리들의 인식 개선 또한 시급하다.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이제는 사회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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