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강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자는 수많은 약자가 투표를 한 결과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은가? 물론 공공의 이익을 배제한 채 약자만을 위한 법이면 안되겠지만 현재 대한민국 재개발 현장에서 보이는 법은 강자만을 위한 법이 실행되고 있다.


  지난 해 용산참사는 힘없는 세입자들이 ‘법적으로 했을 때’ 보상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거의 무일푼으로 강제로 쫓겨났고,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법과 사회구조가 부당하다고 농성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바뀌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람의 생명이 끊긴 것을 제외한 비슷한 사건이 서울 홍익대 앞 칼국수 가게 ‘두리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두리반이 맞닥뜨린 법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국민 경제생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임차인(상가세입자)의 영업권을 5년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법은 ‘임대인이 목적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하여 목적 건물의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아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구단위계획 지역에 속한 상가는 강제로 쫓겨나야 한다. 또한 도정법은 지구단위계획 지역의 상가세입자에게 영업보상에 대한 의무나 시설투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가 주어지지 않는다. 즉, 법대로라면 지구단위계획 지역에 있는 두리반은 아무런 보상 없이 5년 영업을 보장받지도 못한 채 강제로 쫓겨나야한다.


  두리반과 같은 강제철거현장의 철거민들은 눈앞에서 불도저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자신들을 밀고 있는 지옥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악법이라는 악마를 보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쫓겨난다면 기존의 삶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 수 있도록 법은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은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1인1표제는 흑인과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많은 세월과 목숨을 내놓은 결과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강제철거민이 목숨을 잃으면 법은 바뀔 수 있을까? 미래에는 누구나 당연시 여길 법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면 그 목숨은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수많은 강제철거민이 부딪히고 있는 이 벽이 얼른 허물어져 두리반의 그들이 얼싸안고 잔치를 벌이는 날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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