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연 박사’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고, 어릴 적 시골에 있는 외가에서 경험했던 자연의 모습을을 스토리텔링해서 들려주다 보니 그런 별명이 지어진 것 같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나는 꽃과 식물들이 참 좋다. 어떤 이는 여행으로, 음악으로, 공연으로 힐링을 한다면, 나는 가까이에서 두고 보는 식물을 통해 힐링을 한다. 매일 매일 한 잎씩 세상 구경하듯 작은 떡잎이 자라나서 큰 잎이 되고, 찬 바람이 불면 단풍이 들고 또 떨어지고 봄이 되면 다시 잎이 나는 식물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나름대로 질서와 원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호프 자런(Hope Jahren)이 지은 책 <랩걸 Lab Girl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은 강인하고 섬세한 한 여성 과학자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영향으로 과학자가 되고, 그것도 식물 과학자가 되면서 자기 실험실을 중심으로 식물을 관찰하며, 그 속에서 작가의 특유의 예민함과 따스함으로 나무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삶을 통찰하듯 담담하게 이어 나갔다. 이 책은 주로 아버지가 읽고 딸에게 권하는 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나무가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립하며 덤덤하게 잘 자라듯, 사랑하는 딸이 나무와 같이 당당하게 인생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책을 통해서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2014년 이 책이 출간되면서부터 과학자이면서 작가로서 잘 알려진 신경학 과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와 인문학적 자연주의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부재를 아쉬워하던 독자들은 호프 자런이 그들을 대체하는 여성 과학자라고 평가했으며, 그의 따듯한 문장으로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또한 여성 과학자에 대한 사회의 불공정한 편견과 맞싸워 온 한 여성의 삶과 사랑, 과학자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보여준다. 이 지구에서 인간과 더불어 또 하나의 생명체인 식물은, 동물과 달리 목소리가 없고 의식이 없다고 판단돼 왔다. 호프 자런은 인간이 식물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을 식물에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인정해야 식물에게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 문명 발달의 과정에서 식물은 크게 세 가지, 즉 식량, 의약품, 목재로 단순하게 분류됐다. 인간이 이 세 가지를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더 다양한 형태로 손에 넣고자 하는 과정에서 식물 생태계는 황폐해졌다. 그 규모는 자연재해만큼이나 심각하여, 수백만의 식물 종들이 희생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식물의 개체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저자는 녹색이라는 단어가 자연, 휴식, 평화, 긍정이라는 개념과 연관 지어 녹색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단순한 업무 수행에서 창의력의 향상 효과를 강조한다. 

우리 인간은 지구가 영원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남극의 빙하는 최근 몇십 년 동안 10% 이상 녹아내렸으며, 앞으로 100년 안에 90% 이상이 녹는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존을 비롯한 정글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환경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이미 상당수의 나무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베어지고 있다. 우리의 후대를 생각한다면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책상 위에 화분을 하나 올려두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함을 작가는 당부한다. 나는 푸른 잎이 좋아 외래종인 유칼립투스 나무를 키우고 있는데, 거의 3년이 넘었다. 자라는 속도가 더뎌 속을 태우기는 하지만 초록이 주는 생동감을 늘 느낄 수 있고 풍부한 잎사귀가 좋다. 실제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나무에게 잘 잤느냐고 인사한다. 그리고 그 잎을 만져준다. 그것이 과학이든 비과학이든 나무는 내 말을 다 알아듣고 나의 관심으로 자랄 것이라고 믿고 교감한다. 대학생은 바쁘다. 오늘도 과제와 시험의 압박으로 두통이 날 지경이다. 화분을 하나 사든지, 이 책을 읽어보든지 하나를 해보자. 이를 통해 마음이 따듯해지고 담담하게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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