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

 

문재인 정권은 지난 5월 ‘3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 ‘수도권 광역교통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일산과 남양주에서 서울역, 송도에서 여의도, 동탄에서 강남역까지 모두 30분대에 도달할 수 있는 꿈 같은 비전이다. 무슨 돈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지 재원대책이 없지 않느냐, 총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겨 아예 지방을 죽일 셈이냐는 비판이 작게나마 나오곤 있지만, 우리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수도권을 만들겠다는 문 정권의 선의를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말은 바로 하자. 문 정권은 ‘진보정권’이 아니라 ‘수도권정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수도권당’으로 당명을 바꿔라. 그렇게 해도 이미 당신들의 포로가 된 지방민들의 상당수는 내년 총선에서 여전히 당신들의 정당에 표를 던질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말라. 다른 정당들도 모두 뿌리를 어디에 두었건 사실상 수도권정당을 지향하고 있으며, 역대 정권들도 모두 수도권정권이었으니 겁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건국 이후 70년 넘게 고착화된 ‘서울 공화국’체제라고 하는 ‘경로의존(經路依存: path dependency)’의 굴레를 한 정권이 돌파해내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비록 정치력 부재로 실패하긴 했지만, 노무현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 시도를 긍정 평가한다. 모든 정권들이 ‘경로의존’을 거스르기 어려워 수도권정당의 기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고충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진 않는다.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건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올바른 방향 전환이나마 해보려는 치열하고 끈질긴 자세와 노력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역대 수도권정권들은 수도권 비대화를 저지르면서 늘 ‘민생’을 내세우는 ‘토건 사기극’을 펼쳐 왔다. 그 사기극의 공식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교육정책과 일자리 정책을 비롯한 주요 정책들을 통해 서울로 인구가 몰리게 한다. 둘째, 서울 인구집중으로 인한 주거문제 해결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서울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한다. 셋째, 신도시 건설이 불러온 교통난 해결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수도권 교통시설에 국부를 탕진한다. 이 사기극은 수도권 인구집중을 가속화하며, 수도권 신도시의 교통시설 건설은 끝없이 반복된다.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지방 소멸’의 위기가 임박했건만, 수도권정권들에겐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없다. 심지어 지방민들조차 이 문제로 ‘촛불집회’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자식들을 서울로 보냈거나 서울로 보내려고 애쓰고 있는 지방민들은 사실상 ‘잠재적 서울시민’이기 때문이다.

역대 수도권정권들은 예산과 인사를 비롯한 정책행위를 빙자해 지방민들의 ‘포로화’를 획책해 왔다. 지방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없게끔 지역간 이간질을 한 ‘분할지배’의 역사는 지방민의 역량과 창의성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울의 권력 핵심부에 강한 줄을 갖고 있느냐가 지방정치와 행정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혁신은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원칙에 따라 서울을 향해 크게 울어대는 것으로 전락했다. 지방을 방문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 과자 부스러기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역대 대통령들의 주요 통치행위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수도권정당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걸 인내할 수 없어 ‘더불어지방당’을 창당하고자 한다. ‘지방’은 상징일 뿐 우리는 지방의 이익을 표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자리 때문에 사실상 출향(出鄕)을 강요당한 수도권 서민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현 체제에 만족하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지방의 토호 엘리트들도 우리의 싸움 대상이다. 우리는 서울-지방의 문제는 계급문제임을 알리는 동시에 ‘진보’를 참칭하는 기존 가짜 진보세력의 민낯을 폭로하고 진보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면서 진정한 국익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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