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기자
kyj1999@pusan.ac.kr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건 대사도, 연기도 아니었다. 여성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모습만이 떠올랐다. 여성을 노골적으로 훑는 카메라와 성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연출은 불쾌함을 너머 무례하다고 느껴졌다. 다른 한국 영화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성들은 대사 몇 마디만 던지고 퇴장했으니 서사랄 것도 없었다. 극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오직 남성의 폭력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할 뿐이었다. 영화 내에서도 여성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도구적으로 사용된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나니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상업 영화에서 여성 감독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성 영화인이 영화 산업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영화계의 남성 중심적인 성향 때문이다. 영화 산업에 여성의 비율이 왜 적냐는  질문에 취재원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이미 수십 년 동안 남성들이 영화 산업의 주류였기에 진입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기성 영화 업계는 여성 영화인들을 같은 영화인으로서 동등하게 여기지 않았다. 인터뷰를 했던 한 감독은 “촬영팀에 있었을 때 나 때문에 예산을 추가 지출하게 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수가 적은 여성 스태프를 위해 별도의 방을 잡아야 하는 것을 영화 현장에서 꺼린다는 것이었다. 영화 현장에서의 이런 분위기는 여성 영화인을 힘들게 만든다. 그들이 자주 쓰는 ‘살아남는다’는 표현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여성 영화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단지 성평등이나 공정함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영화 산업이 100년이라는 정점만을 찍고 사멸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매번 같은 남성 감독, 남성 주연에 비슷한 주제의 영화에 관객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진부한 영화 내용을 비꼬는 밈(Meme)까지 나왔다. 다양한 영화가 나오지 않으니 영화 산업은 조금씩 후퇴하기 마련이다. 또한 갈수록 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점도 여성 영화인이 늘어야 하는 이유다. 서양의 흔한 편견 중 하나는 남성이 비싼 대가를 치를 경우 여성을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릴린 먼로가 맡은 영화 속 캐릭터들로 인해 금발 여성의 편견이 고착화됐다. 이렇듯 수동적이고 성적인 부분만 강조된 여성의 모습이 계속 미디어에 노출된다면 여성은 동등한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성적 대상화가 되는 객체로 인식될 뿐이다.

외국의 경우 이미 미디어의 이런 현상을 알아차리고 1985년부터 벡델 테스트를 도입했다. 벡델 테스트란 영화 산업에서 여성이 적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기준은 총 세 가지로 구성돼있다. 첫째,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셋째,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이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되는 간단한 기준치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대다수는 이것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이렇게 적은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영화가 상영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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