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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과 <반일 종족주의>를 돌아보며
  • 김정윤 기자
  • 승인 2019.10.19 18:13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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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교수가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5일 ‘<반일 종족주의>와 부마민주항쟁’ 강연이 우리 학교 민주동문회 주최로 성학관 102호에서 열렸다. 민주동문회 신병륜(수학 85, 졸업) 회장은 “<반일 종족주의>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내용으로 강연을 구성했다”라며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선배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알리고자 주최했다”라고 말했다. 강연은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 교수가 맡았다. 

먼저 축하 공연이 진행됐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강연대에 오른 한홍구 교수는 “부마민주항쟁이 서울의 봄보다 사람들에게 덜 기억되는 것 같아 학자로서 아쉽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우리나라 4대 민주항쟁 중 하나다. 우리 학교는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인해 학생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79년 YH무역사건이 일어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 의원을 제명하자 부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학교에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다. 시위가 커지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산광역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한홍구 교수는 “계엄령은 적과 교전하거나 사회 질서가 문란할 때 내려지는 것”이라며 “시위를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위법이다”라고 말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탄압하려 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후 독재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사태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독재가 시작됐다. 이어 그는 광주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5·18 광주학살을 일으켰다. 한홍구 교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 진압에 직접 참여했다”라며 “그때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면 초반에 강력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5·18 광주학살에 반영됐다”라고 말했다. 또한 부마민주항쟁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과 손을 잡는 등의 이유로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조명이 현재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홍구 교수는 “부마민주항쟁이 잊힌 것은 부산시민의 책임이 크다”라며 “부마민주항쟁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반일 종족주의>와 한일관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유에 대해 아베 정권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가 개인의 청구권 문제와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해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전형적인 일본의 자학사관이 반영됐다”라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쓰인 근거도 보편적이지 않은 내용들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날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뜻깊은 강연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세훈(금정구, 25) 씨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강연을 보러오게 됐다”라며 “현대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 뜻깊은 강연이었다”라고 말했다.

김정윤 기자  jungyoon0207@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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