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음악비평가

최근 재미난 공연 포스터를 한 장 접했다. ‘Various Artist와 함께 떠나는 음악 여행’이라는 제목을 단 행사 포스터로 애리, 키라라, 천미지, 김사월, 서이다, 이재경, 피아노 슈게이저, 코스모스 슈퍼스타, 예람, 장명선까지 총 10인의 음악가가 30분씩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음악가들의 증명사진과 이름을 한 쪽에 나열해놓고 출연진이 함께 찍은 사진을 전면에 배치한 이런 형태의 디자인은 서양 전통음악 전공자들이 ‘제자음악회’ 같은 제목으로 공연을 열 때 심심찮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관습을 얼마나 겨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간 서양 음악계에서 접해온 정직한 포스터들을 떠올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디지털 음악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를 떠돌며 들었던 몇몇 디제이 프로듀서들의 ‘믹스’에서도 종류는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테크노나 하우스 등 건조한 전자음악이 이어지다가 바흐나 비발디의 극적인 음악이 청천벽력처럼 비트를 가르고 등장할 때면 참 멋있으면서도 어딘가 웃겼다. 장르를 한정 짓지 않고 음악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묘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믹스에서 서양 전통음악이 사용되자 이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새로운 것을 배운 기분이었다. 지루하거나 어렵긴커녕, 유연한 맥락 위에서라면 이 음악도 밈(meme)처럼 쓰이며 사람들을 은근히 웃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08년, 꽤 화제가 되었던 인순이의 예술의전당 대관 불가 사건은 내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물론 예술의전당에서 대관 불가 답변을 받는 경우는 그때도 지금도 비일비재하고 전당 측에서 언급한 이유 중 몇몇에는 동감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일을 통해 드러난 서양 전통음악계의 배타적인 분위기였다. 권위 혹은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종류의 표현이나, ‘클래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조의 말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적은 근거와 많은 위계가 서려 있었다. 나 또한 서양 전통음악의 애호가로서 그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그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그렇게 선을 그으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뜻대로 조율하고 싶었던 것이 서양 전통음악만의 독립적인 영역인지 그 음악에 대한 세간의 인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문을 걸어 잠근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 음악계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방음이 잘 되어 있는 공간을 조성해 모두가 침묵하며 음악을 듣는 환경을 만들어냈지만, 그곳에서 들은 음악이 휴게소 화장실에서 똑같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디에서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데다 음악을 접하는 다양한 청취 방식이 생겨난 오늘날, 그런 배타적 태도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서양 전통음악계가 바깥과 평등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은 채 분리된 영역에 머무르길 고수했다면, 이어질 결과는 끝없는 박물관 화와 무관심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대화를 꾸준히 추구해왔던 이들 덕분에 서양 전통음악계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이 음악계의 핵심부라 할 수 있을 법한 페스티벌이나 공연장에서 더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는 것이 시시각각 목격됐다. 장르 내부에서도 문을 활짝 열고 쇄신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 스스로 부여한 권위를 조금씩 내려놓으며 소통하려 노력하는 광경을 바라볼수록 외부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 면에서, 서양 전통음악 문화의 어떤 일부를 대상화해 밈처럼 사용하는 몇몇 사례들이 나는 거의 반갑기까지 했다. 

한번 웃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이런 작은 접합점이 불러올 변화가 절대 적지 않다고 본다. 각 장르가 이미지를 다루는 특정한 방식,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의 만남과 더불어 최근에는 장르에 따라 공고히 구분되어 있었던 공연장도, 그에 따른 청취 문화도 조금씩 뒤섞이는 것을 느낀다. 구분되어 있던 경계들이 조금씩 유연해지는 광경은 음악적으로도 몹시 흥미롭지만, 내게는 이것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음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 음악 바깥의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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