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영국 해군의 암호 해독반인 40호실에서 여러 사람이 암호화된 전문을 해독하고 있었다. 그들은 약 1천 개의 숫자가 적힌 암호문을 한 글자씩 변환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이 밝혀졌다. 바로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치머만 전보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외무장관 아르투어 치머만(Arthur Zimmermann)이 멕시코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낸 밀지다. 밀지는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개시할 경우 멕시코의 참전을 부탁하는 것으로, 대가로 미국의 영토 일부를 양도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보를 멕시코에 보낸 이유는 영국의 해상봉쇄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1917년 독일은 영국의 해상봉쇄로 물자부족이 심해져 가고 있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1915년에 실행했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해 연합국으로 향하는 모든 배를 격침하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작전 재개시 미국이 연합국의 편에 붙어 전쟁에 참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였다. 1915년 무제한 잠수함 작전 때 루시타니아호에 타고 있던 미국인들이 죽으면서, 미국 내 반독 여론이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치머만은 미국 아래에 있는 멕시코와 동맹을 맺기 위해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이 전보 내용을 영국에 들키고 말았다. 전보는 통신선을 통해 미국주재 독일대사를 거쳐 멕시코주재 독일대사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독일은 해당 통신선이 영국을 거쳐 가는 케이블이기 때문에 전보가 영국에 흘러들어 가게 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전보를 약 1천 개의 숫자로 이뤄진 암호문으로 만들어 전송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영국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암호 해독본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독일이 멕시코와 모종의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알게 됐다.

1917년 2월 24일 영국은 전보 내용을 미국 정부에 넘겼고, 3월 1일 자 신문에 전보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전보가 밝혀지기 전까지 미국 정부는 미국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할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을 침공하는 계획으로 인해 전쟁 참전에 대한 여론이 강해졌다. 게다가 치머만이 전보 내용을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 미국에서 참전 여론이 거세졌다. 결국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 참전안 승인을 요청했고, 압도적인 찬성 결의로 4월 6일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이후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미국이 합세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한양대학교 글로벌 인텔리전스 연구센터 박종재 특별연구원은 <정보전쟁>에서 치머만 전보 사건에 대해 ‘군사적 승리를 가능케 한 정보가 외교전에서도 전쟁 흐름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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