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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들
  • 오선영 소설가
  • 승인 2019.09.28 17:48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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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김동률이 결성했던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의 노래 중 ‘그땐 그랬지’라는 곡이 있다. 마음 졸이고 기다리던 대입 결과, 잠 못 이루던 입대 전날, 실패로 끝난 뜨거웠던 첫사랑 등 누구나 한 번씩 통과했던 청춘의 흔적들을 되짚으며 지난 시절을 이야기한다. 노래를 들으며 “맞아, 맞아 진짜 그랬어”라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저 노래를 부르던 당시 두 가수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심히 놀라기도 했었다. “참 세상이란 정답이 없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연습이더군” 같은 가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남자가 애수 어린 눈으로 지나온 나날들을 회고하는 것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필자에게 또 한 번 놀랐는데 이유인 즉, 가사를 평가하고 있는 필자가 너무 꼰대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적건 많건 간에 개개인의 경험 크기와 빛깔이나 질감은 다르기 마련이며,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어린아이도 제 과거를 되새김질하면서 추억담을 이야기할 수 있고, 80세의 노인도 앞으로의 버킷리스트나 비전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대 중반의 가수가 ‘그땐 그랬지’라고 과거를 주억거리는 일을 ‘나이도 어린 게 별일이네’라는 식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가사에 대해 이야기 한 건 최근 김봉곤의 소설 <시절과 기분>을 읽으면서 “맞아, 맞아 진짜 그랬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쳤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첫 책을 낸 신인 작가 ‘나’에게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혜인’이 연락을 해온다. 서점에서 나의 책을 봤다는 혜인에게 나는 직접 책을 주겠다고 말하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혜인을 만나러 온다. 소설은 과거 혜인과 ‘나’의 이야기, 현재의 ‘나’,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서 주고받는 대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고 부산대역에 내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혜인도 졸업을 하고는 정문까지 올라올 일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부산은행 사거리 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면서 달라진 풍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학교까지 온 김에 상학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제일 좋아하기도 했던 인문관 건물만 보고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내친김에 우리는 상대 건물 안까지 들어갔다’

위의 내용은 소설 <시절과 기분>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배경은 2000년대 초중반의 부산대와 현재의 부산대의 모습이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이 있지만, 이렇게 부산대의 모습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나오는 소설은 처음이었다. 정문 앞 ‘품빠이의 1천 원짜리 막빙수’, 지금은 사라진 과일 빙수점 ‘비타민’과 ‘요거트 빙수집’ 등.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초중반의 부산대 풍경이 소설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소설을 읽는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자꾸만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소설의 내용보다는 배경이 된 부산대 모습에 마음이 더 빼앗겨서였다. 4,500원하던 ‘두 개의 비올라’의 함박스테이크, 정문 앞 ‘따봉’의 2,000원짜리 볶음밥, 현재 파스쿠치 커피숍 자리에 있던 ‘부산도서’ 등. 삼삼오오 모여 다니던 친구들과 당시 인기 있던 유행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추억의 끝물은 ‘보고싶다, 친구야!’로 매듭지어졌고 말이다.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되는 이 소설의 반전은 주인공 ‘나’가 커밍아웃을 한 ‘남성’ 작가라는 점이다. 혜인은 내가 사귄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친구였고, 그렇기에 ‘나’는 혜인을 직접 만나서 자전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주려고 한다. 친구의 ‘시절’과 ‘기분’을 헤아리려는 구남친의 마음 씀씀이. 혜인이 마음을 다치지 않길 바라는 ‘나’의 심정은 여느 남자친구보다도 윤리적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말미로 가면 배경보다는 다시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그 시절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함께 그 터널을 통과한 누군가의 배려와 태도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오선영 소설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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