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선 시사 만화경
진보 코스프레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
  • 승인 2019.09.28 17:44
  • 호수 1589
  • 댓글 0

2011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슬로건은 “1% 대 99% 사회”, “우리는 99%다”, “탐욕스런 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등이었다. 이 시위는 전 세계로 번져 나갔고, 한국에서도 “1%에 맞서는 99% 분노”, “1%에게 세금을, 99%에게 복지를” 등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 시위가 벌어졌다.

정의롭고 진보적인 시위였다. 그런데 과연 “1% 대 99% 사회”라는 프레임은 옳은 것일까? 최근 출간된 리처드 리브스의 책 <20 대 80의 사회>는 이 프레임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그간 ‘20 대 80의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많이 있었지만, ‘1 대 99의 사회’에 시비를 걸진 않았다. 상호 공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책 <20 대 80의 사회>는 사실상 공존불가론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리브스는 2011년 5월 1일에 벌어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 3분의 1 이상이 연 소득 10만 달러가 넘었다는 점, 그리고 2015년 1월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세제 개혁안이 당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낸시 펠로시 등의 강력한 반대로 죽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세제 개혁안은 상위 20%에 속하는 중상류층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펠로시가 누군가? 현 하원의장인 펠로시는 ‘진보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민주당 내에서 강경한 진보 노선을 걸어온 인물이다. 1%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과 독설도 불사했던 그가 19%의 이익을 위해선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한 것이다. 19%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1%만 문제삼는 것으로 극심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미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에 더 절박하다. 책 <불평등의 세대>의 저자인 이철승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우리 사회는 정규직 노조와 자본이 연대해서 하청과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로, 1% 대 99%가 아니라 20%가 80%를, 또는 50%가 50%를 착취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언론, 지식인, 정치인들이 불평등 문제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라. 모두 다 재벌만 문제 삼는다. 그런 프레임에 이의 제기를 하면 ‘친재벌’로 몰리기 쉽다. ‘노동귀족’이란 말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노동자계급 내부의 특권층을 지적하기 위해 쓴 말이지만, 한국에선 그 말을 쓰면 ‘반노조’ 의식에 찌든 ‘수구꼴통’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왜 우리의 진보는 1%에만 집착할까? 1% 개혁을 이룬 후에 나머지 19%에 대한 개혁에 나서려는 전략 때문일까? 그렇게 보긴 어렵다. 19%는 1%와의 상향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오히려 자신은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 개혁의 주체는 사실상 정책을 만들고 여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고위 관료와 각종 전문직 집단으로 대변되는 19%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만들어내는 1% 개혁안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 ‘강남좌파’가 문제가 된다. 이들이 외치는 진보는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진보 정책의 주요 ‘의제 설정’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을 외면한 진보가 진보일 수 있을까? 그것도 진보라면 그건 ‘진보 코스프레’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

그런 ‘진보 코스프레’가 꼭 기득권 때문 만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진영 논리도 작동한다. 자기 진영 내부에 긴장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주제보다는 진영 논리에 충실한‘모범답안’만 이야기하려는 안전의 욕구가 1% 비판만 하게 만든다. 자신도 포함되는 19%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1% 비판에 집중하는 것, 이게 바로 이 글을 쓰는 나도 가끔 저지르는 ‘진보 코스프레’의 정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