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탁(국어교육) 교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7)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괴물과 싸워 이기는, 위험천만한 쾌감을 맛보게 했다. 괴물은 인간이 만든 도덕적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인간 사회에 막대한 해악만을 끼치는 존재다. 인간이 괴물과 사투하는 장면은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 혹은 가상의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은 괴물과 맞서 싸울 엄두를 못 낸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괴물에게 싸워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괴물을 물리치거나 괴물의 출현을 막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가상 세계에서는 물론 현실 세계에서도 나 대신 괴물과 싸워서 이겨 줄 가능성이 엿보이기만 하면 그를 지지하고 추종한다. 

괴물을 물리치자면 괴물과 맞서 싸우는 사람 또한 괴물이 돼야 한다. 괴물이 지닌 모든 사악한 요소를 갖지 않으면 괴물을 이길 수 없다. 괴물을 물리치는 인간은 흔히 영웅이라 일컬어진다. 가상 세계에서든 현실 세계에서든 괴물을 물리쳐만 준다면 영웅의 사악한 요소는 일체 문제 삼지 않는다. 괴물을 물리치는 데 필수 불가결이라 생각한다. 실제로는 악행이지만 영웅은 궁극적으로 선을 지향하므로 그 악행은 진짜 악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괴물을 물리친 영웅을 지지하고 숭배한다. 

그런데 영웅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도덕적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인간이다. 평범한 사람은 영웅 또한 괴물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괴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영웅을 만들었지만, 괴물을 물리친 영웅이 실제로는 괴물과 진배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뒤늦게 알아차리더라도 평범한 사람은 영웅이란 이름으로 바뀐 괴물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영웅에 대한 저항 혹은 반항은 괴물이나 할 수 있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괴물과 영웅을 만드는 주체는 따지고 보면 평범한 사람들 자신이었다. 물론 스스로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앞의 괴물을 물리친 영웅이 또 다른 괴물이 되지 않게 성인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했던 듯하다. 성인만이 현실 세계에 출몰할 수 있는 괴물을 사회 친화적인 존재로 바꿀 힘을 지녔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괴물은 스러지지 않았고, 그들 또한 괴물이 된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는 괴물 같은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평범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도록 진전되어 왔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악행을 막아내는 방향으로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일상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런 행위 가운데 사회적으로 용납되어서는 안 될 악행의 경계를 지은 것이 법이다. 크든 작든 그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하고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에는 법적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타인의 악행을 눈감아 주면서 자신의 악행에 대한 질책이나 처벌을 회피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그는 괴물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내가 괴물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도덕적 성찰과 타인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