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 장면을 글로 옮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알맞은 수식구를 붙이거나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독자가 거부감 없이 상황에 공감하도록 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서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우리의 부모님과 같은 세대의 동구는 초등학생의 입장에서 당시의 보편적인 가정 분위기, 교육, 그리고 정치 현실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거부하기 힘든, 비록 소설이지만 누군가는 겪었을 아픔이라는 것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동구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친할머니, 그리고 여동생 영주와 함께 살고 있다. 1970년대를 살아가던 이 가족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 간 갈등이 심각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유년 시절이 어땠는지를 들었고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점이 동구의 아픔을 부모 세대가 겪었던 아픔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 소설에서 고부갈등이 심해지는 때는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의 경제가 힘들어질 때부터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졌고 자신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의지해야 가정이 부흥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동구마저 그 위력을 의심할 만큼 힘없고 나약한 믿음이었다. 도리어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인 영주가 폭력을 막는 장면에서 힘이니 지위니 하는 것들이 가족한테는 소용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3학년 담임을 맡은 박영은 선생님(이하 박 선생님)은 동구의 난독증을 처음으로 알아보고 매일 방과 후에 함께 남아 공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다. 동구의 고민도 들어주고 관심을 갖는 등 동구에겐 천사같이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이 무렵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전두환, 노태우 등이 주도하여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킨 12·12사태가 일어난 직후, 거리에는 탱크가 들어섰다. 박 선생님이 광주로 가기 하루 전, 동구는 박 선생님, 같은 동네 사람인 주리 삼촌과 그 삼촌의 동문인 이태혁이라는 사람 셋이서 만나는 자리에 함께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각자가 바라보는 정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주리 삼촌이 이제 군부 정치가 끝나고 민주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 찬 말을 하자 이태혁은 또 다른 독재정치가 시작될 뿐이라며 반박하고 나선다. 안타깝지만 미래에서 봤을 때 이태혁의 말이 사실이다. 그리고 더 먼 미래에서 볼 때는 주리 삼촌의 말도 사실이 될 것이다. 비교적 얌전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 선생님은 차분히 말을 꺼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해요. 사람들의 피가 담벼락을 적시고 하수구로 흐르는 그날이 온다면, 나는 과연 거리에 설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의 내면은 벙어리가 되었는지 대답을 하지 않네요. 하루라도 나의 갈 길을 확신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심 없이, 두려움 없이, 흔들림 없이, 광화문 앞의 해태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온몸에 휘감고 담대하게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갈 수 있다면 말이에요”.

과거 대학생 시절, 박 선생님은 언제나 유보적인 태도 때문에 비판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에 주저 없이 나서는 이는 드물 것이다. 오히려 선생님은 자신의 태도를 부끄러워하며 진심을 알고자 노력했다. 박 선생님이 광주에 간 뒤의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광주에서 그가 말한 ‘혁명의 날’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동구는 대화를 마치고 걸어 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새가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정원에 있는 금색 곤줄박이 새가 다시 아름다운 정원에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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