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 교수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역사가 길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최근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에 대한 반발로 벌어진 한국의 불매운동에 대해 일본의 어떤 신문에서 내세운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불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가져왔고, 관광과 맥주, 의류, 자동차 등 그동안 인기 있던 일본 제품들의 판매고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불매운동의 역사적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불매운동의 영어 번역어는 보이콧(boycott)인데, 다만 상품을 사지 않을 뿐 아니라 “거래를 중단한다” “교류를 끊는다” “참가를 거부한다” 등, 상대방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일방적으로 단절하는 행동을 널리 포함하는 말이다. 그 어원을 제공한 역사적 사건도 불매운동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건이었다. 19세기 말, 찰스 보이콧(Charles Cunningham Boycott)이라는 영국인이 아일랜드에 땅을 가진 영국인 지주들을 위해 현지에서 소작료를 걷다가 소작인들의 항의에 부딪혔다. 보이콧은 굴하지 않고 소작인들을 다그쳤으나 영국인에게 착취당하는 아일랜드인의 설움에 소작인의 설움까지 겹친 농민들은 농사일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대답했고, 심지어 보이콧에게 생필품을 파는 일조차 거부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보이콧은 1880년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이후 그의 이름은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불매 보이콧’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를 보면, 가장 역사적 의미가 컸던 불매운동은 찰스 보이콧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불매운동으로 손꼽힌다. 1764년에서 1766년까지, 영국이 프랑스 등과의 7년 전쟁에서 입은 손해를 벌충하고자 아메리카 식민지에 중과세를 매겼는데, 이에 반발한 식민지인들이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 아래 광범위한 불매 운동을 벌였다. 그 가운데는 단순한 불매운동을 넘어 아메리카에 들어오던 영국 차 상자를 바다에 쏟아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도 있었다. 이는 결국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영국 식민지 사이의 대결을 몰고 왔으며, 미국 독립전쟁과 건국으로 이어졌다.
 

1985년에서 1969년까지 이어진 ‘델라노 포도 불매운동’은 저임금에 과도한 노동량으로 착취당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에 미국 대중이 공명해준 사건이었다. 캘리포니아 델라노 사의 포도 따는 필리핀 이주민들이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도 훨씬 낮은 임금으로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강요당하자, 견디다 못해 작업장을 이탈했다. 그 일이 전국에 알려지자 미국 국민은 델라노 상표 포도를 불매하는 운동을 거국적으로 벌였으며, 1천 4백만 명이 동참했다. 결국 이는 1970년, 델라노 사가 항복하고 더 인간적인 조건으로 노동자들과 재계약하는 일을 이끌어냈다.
 

이 불매운동은 소비자 스스로의 손해와는 무관한, 사회적 대의를 위한 불매운동이었다. 그와 비슷한 불매운동이 1977년에서 1984년까지 있었다. 세계적인 분유 업체 네슬레사에서 ‘제3세계 유아들에게 모유를 대체할 제품을’이라는 캠페인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 제1세계의 어머니들. 그리고 그 밖의 시민들은 “모유보다 영양학적으로 떨어지는 제품을 아기들에게 먹이려 한다”라며 반발했다. 더욱이,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깨끗한 마실 물을 구하기 힘든 여건이었고 그렇다면 아기들의 입에 들어갈 네슬레 제품의 질은 더욱 떨어질 터였다. 네슬레 제품에 대한 열화와 같은 불매운동으로 네슬레의 캠페인은 취소됐으나, 영국 등에서는 아직까지 네슬레 제품에 대한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1992년에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이 나왔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대란과 그 배경이 된 대기업들의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이 상업자본주의에 대한 전 세계적인 항의를 표시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를 본받아, 2018년 한국에서도 여혐이 뚜렷한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반페미적이라 여겨진 게임이나 웹툰에 대한 불매 운동 등이 있었다. 
 

최근 학회에서 일본 불매운동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쪽에서는 “이것은 일본에 대한 증오와 반감에서 비롯된, 무력을 쓰지 않는 공격행위”라고 주장하고, 반대쪽에서는 “불의한 제재에 반대하는, 소비자들의 비폭력 평화운동”이라 주장했다. 이 본질이 과연 무엇일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본받을 만한 불매운동’으로 기록되려면 어느 한쪽의 이익이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세계적 대의에 맞는 불매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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