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 교수

<해피엔드>, <사랑니>, <모던보이>, <은교>를 만들었던 멜로드라마 장인 정지우 감독, 청춘스타 김고은과 정해인 캐스팅, 첫사랑 이야기, 1994년 레트로 배경. 이 요소들이 만나서 만들어진 영화라면 관심을 안 가지기가 힘들다. 2000년대 이래로 멜로드라마가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예로부터 멜로드라마를 매우 사랑해왔다. 지금이야 스릴러와 액션 영화가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이전만 해도 멜로드라마가 한국 영화의 80%를 차지했고, 지금도 TV 한류의 많은 부분을 로맨스, 멜로드라마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박보영과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이 깜짝 성공을 거두면서 첫사랑 영화는 세대 간 벽을 허무는 화합의 콘텐츠로 떠올랐다. 향수를 자아내는 레트로 배경은 부모 세대에게는 첫사랑 열병을 앓던 그 순수했던 지난날을 기억하게 하고, 신세대인 자녀 세대는 첫사랑 진행형을 부모와 함께 공유하며 과거로 거슬러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이전 세대의 사랑 방정식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여름과 추석시즌을 겨냥한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을 배경으로 라디오라는 고전적 소품을 활용하고, 1990년대 음악을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2005년까지 두 연인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과 사랑의 전개를 보여준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처음 전파를 타던 그 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나고, 1997년 IMF 시기를 넘어서고, 2000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2005년 일명 ‘보이는 라디오’의 시도가 이루어지던 첫날로 마무리되면서 본격 공감각 뉴미디어 시대까지 크게 네 단계로 두 사람의 사랑의 파고가 펼쳐진다. 

싱그러운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초반 사회인으로서 깊이를 더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올 때가 있었지만 아픈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고 성격으로 형성되는 것을 더 이상은 지켜보기 힘들어 떠난다. 그러다가 추억과 상처를 공유한 두 사람이 그리워하다 결국에는 다시 만나는 것, 이건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사연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특별한 사건들의 전개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진행을 타고 흐른 수많은 감정의 결들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멋진 선택이다. 설렘과 안타까움, 기쁨과 고통, 감사와 원망 같은 여러 감정의 파고가 서사와 음악과 커플의 예쁜 얼굴에 실려 전달되는 가운데,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그 시절 젊음을 한껏 다시 호흡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둘러싸고 펼쳐진 악평의 세례 속에서 필자는 정신이 아득했다. 개연성이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등으로 이어지는 관객 평을 접하고, 신인류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사랑의 감수성이 1990년대 감수성과 많이 다른 것인지 의아해하고 있던 참이다. 그리고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은, 온 세상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되긴 전과 지금은 감수성과 사랑 방정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샬 맥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이 말했듯이 “미디어가 곧 메시지”인 시대에 고백하지도 않은 채 마냥 기다리다가 우연처럼 다시 만나는 과정이 쉽게 공감을 얻지 못했을 수 있다. 

기다리고, 아프고, 일어서고, 용기를 내고 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는 연애가 아니라, ‘사랑학개론’을 듣고 유튜브를 통해 사랑 상담을 받고 인터넷을 통해 여러 연애 방법론을 깨우치는 이 시대에 답답하게도 천천히 다가서는 이 영화가 반갑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백도 없고 프로포즈도 없었다. 그래도 둘은 어느 순간 만나고 있었고 어느 순간 사랑의 열병에 웃고 울고 있었다.  

그때는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는 시대였다. 이에 반해 지금은 헤어지기가 어려운 시대다. 한번 연결되면 그 연결을 끊기가 어렵고 잊히기가 어려운 시대다. 어쩌면 만남의 고난을 담은 사랑 영화보다, 이별의 고난을 그리는 사랑 영화가 더 공감을 사기 쉬운 시대인 것 같다. 그래서 인류학적 보고서와 같은 이 사랑 영화가 더욱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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