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나 캠퍼스에 돌아오니 수십년 된 히말라야 시더들이 대거 사라졌다. 보행자 도로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친숙한 나무를 베어낸 자리를 보니 뭔가 휑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명이 떴지만, 교내 게시판에는 이 조치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캠퍼스 환경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눈에 쉽게 뜨이는 나무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환경 문제에는 여전히 구성원들이 무관심한 것도 사실이다.

학과 사무실이나 공용 시설에 들러보면 온갖 책자와 유인물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누가 보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두툼한 편람이나 요강, 안내서 따위의 이름으로 화려하게 인쇄된 책자나 팜플렛은 셀 수 없이 많다. 젊은 세대는 거의 모든 일을 모바일로 검색해 보고 처리한다. 이들에게 수많은 인쇄물은 그냥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책자들은 관행대로 막대한 예산을 소모하면서 만들어져 배포되고, 버려지고 있다.

학교 행정 역시 비슷하다. ‘전자행정’이라는 정부정책에 걸맞게 교내 행정은 대부분 온라인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다. 요즘엔 모바일에도 기본적인 구색은 갖춰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행정은 이전처럼 종이와 문서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투명한 예산 집행을 위해 법인카드와 전자영수증 제도가 도입되었건만 직원이나 조교들은 여전히 영수증에 열심히 풀칠을 하고 있다. 학교 일부 부서에는 종이영수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골칫거리라는 소문도 들린다. 시대는 21세기로 훌쩍 건너 뛰었지만, 행정 관행은 아직 펜으로 쓰던 20세기 초반에 머물고 있다. 이 모든 낡은 관행 때문에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대한 숲이 사라지고 있다.

교내에 어지럽게 걸린 현수막도 시각적 공해이자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학내외 현안이 있을 때면 살벌한 구호가 난무하지만, 대개 상업적 행사 광고물이나 ‘합격을 축하드려요’ 따위의 애교성 현수막이 많다. 파리를 날리는 이벤트에 참가자를 한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담당자 모습이 역력하게 보이는 교내 행사 공지 현수막도 적지 않다. 현수막 공해 때문에 인도는 물론이고 학교 명물이던 아름다운 철쭉 옹벽까지 황량한 광고판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보직자나 담당자들은 이 문제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수방관하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오래된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산적한 문제 중 일부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지만, 캠퍼스를 둘러보면 건물 안전, 소음 관리, 주차와 이륜차 통제, 보행자 권리 확보 등 작은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의지인 듯하다. 대학 내외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과제가 속속 부상하고 있고,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역시 그 중 하나다. 대학은 현재의 핑계에만 매몰되지 않고 적어도 미래 지향적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캠퍼스 환경 문제에서도 이제는 나무 몇 그루가 아니라 저 너머에 있는 숲을 생각하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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