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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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악용하는 권력층의 횡포가 지속되는 나날 동안 상처의 쓰라림이 무뎌지지 않는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태로, 전국의 대학생이 분노했다. 법은 권력자를 수호한다는 말이 틀림없는 사실인가. 기득권의 대학 입시나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 많은 이들이 세상의 불합리에 분노한다. 지배층의 통념이 관철되는 사회를 향해 학생들은 진상 규명을 외친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이 사회에 살다 보니 금수저나 용의 존재를 향한 부러움이 마음을 지배한다. 또 제도가 바뀐다고 한들 이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라는 무기력함을 깨닫는다. 상반되는 듯 한 두 감정이지만, 아픈 건 같다. 대한민국에서 22년을 살아온 필자는 오늘도 개천에 사는 20대는 언제까지 쓰라려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기득권층은 온갖 권력과 지위로 그들의 인생을 향유한다. 또 그들은 하위 계층과 달리 다양한 분야에 있어 지식을 배우고 역량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더 많은 세상을 배우고 접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부모는 어김없이 의사나 판검사와 같이 기득권층에 속한 부류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는 여유롭게 앞으로 뻗어나간다. 부모의 권력이나 지식이 세습되는 피라미드 서열 속에서 사람들은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극심한 서열 사회 속 개천에서 용이 나는 등의 출세는 있을 수 없다.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없이는 본인이 위치한 계층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불가능하다. 기득권층 부모를 가진 사람만이 부모의 지식과 삶의 양식을 대물려 받아 황홀한 삶을 이어 사는 한국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계층 피라미드에서 하위층으로 갈수록 살아남기 힘들다. 하위층의 자녀는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며 여러 지원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최근 들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하위층이 선택하는 생계형 자살율이 늘기도 했다. 모든 이가 누리는 보편적인 복지 보장체계 없이 골이 깊어지는 소득양극화는 복지 사각지대를 끊임없이 양산한다. 이러한 불합리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도 잘 가고 봐야한다. 대학은 사회로의 초입인 동시에 인생의 서열을 정하는 곳이다.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지에 따라 주변의 시선과 대우도 달라진다. 하지만 극심한 계급사회에서는 명문대에 진학한 하위 계층도 살아남기 힘들다. 능력만 있어도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든 사회기 때문이다.

계급적 위치로 불합리함을 겪는 한국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계층이 계급화 되지 않고, 심화된 학벌주의를 타파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권력이 재생산되는 피라미드 구조를 무너뜨리고 최하층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도록 힘써야 한다. 또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 불균형 완화를 이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앞서 개천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 더 높게 그리고 더 시끄럽게 목소리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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