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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홍등가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다
  • 이지수 기자
  • 승인 2019.09.07 23:17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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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제정된 <성매매 방지법>에 따라 성매매 집결지가 철거되고 있다. 현재 부산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도 철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에 대해 짚어보고 철거 후 방향성을 알아봤다.

<범전동 300번지> 
송상현 광장 앞‘기지촌’

범전동 300번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부전역 7번 출구로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5분 정도 걸으면 길 너머에 송상현 광장을 알리는 표지판과 잔디광장을 볼 수 있었다. 송상현 광장 맞은편은 과거 ‘범전동 300번지’라고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였다. 범전동 300번지는 일제강점기 때 경마장으로 쓰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 하야리아 부대가 자리를 잡으며 ‘기지촌’이 형성됐다. 전쟁이 끝난 후 성매매 여성들은 남은 미군과 시민을 상대했다고 전해진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도입된 후 이듬해부터 토지와 건물 매입을 시작됐고 2015년 아파트를 분양했다. 올해 5월 공사를 마쳐 현재는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세입자를 모집한다는 종이가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부동산 창문에 가득했다. 성매매 집결지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당시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근처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여기서 최근 몇년 간 일했지만 과거 모습은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범전동 300번지는 과거 성매매 집결지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평범한 주거지였다

 

<완월동> 
한국 최초의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입구에 ‘도시재생사업 공청회’ 현수막이 걸려있다

서구 충무동에 있는 ‘완월동’을 찾아갔다. 완월동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낮이었음에도 완월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나무로 뒤덮여 어두웠다. 완월동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성매매 집결지였다. 전국의 3대 집창촌이라 불릴 만큼 규모도 크고 외국인들이 많이 방문했다고 한다. 

완월동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도시재생사업 특별구역 지정 공청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이 걸린 가로등 앞에는 ‘미성년자 출입제한구역 / 오후 8시부터 익일 5시’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었다. 골목을 따라 세워진 건물 문 앞에는 19세 미만 출입·고용금지업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여관 모양이 그려진 간판과 미소방이라 불리는 한 면이 통유리로 된 건물(유리방)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관련 업종에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거나 가게 앞을 청소했다. 큰길로 나가기 위해 왼쪽으로 돌자 영업 중인 가게를 볼 수 있었다. 정육점 불빛 같은 빨간 조명이 새어 나왔고 문틈으로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보였다. 과거 부터 철거된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완월동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해운대 609> 
막을 내린 해운대 집창촌

해운대 609 철거가 확정돼 건물에 매매 종이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해운대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해운대해수욕장이 보였다. 거기서 좀더 걸어가니 해운대 609가 있었다. 해운대 609로 들어가는 길목에 모텔 입구처럼 주황색의 커튼이 걸려 있었다. 해운대 609는 1950년대에 형성된 성매매 집결지다. 1971년까지 주둔해 있던 미군 609부대에서 명칭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해운대 609는 한 면이 유리창으로 된 건물로 이뤄졌고 빨간 커튼으로 창을 가리고 있었다. 창문이 열린 곳을 보니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보였고 빨간 의자도 놓여 있었다. 철거가 완료된 곳은 나무판자로 건물이 덧대져 있고 건물을 매각한다는 안내문도 있었다. ‘출입금지, 해운대 경찰서 특별 순찰 구역’이라는 종이도 부착됐다.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지 않은지 먹다 남은 음료가 들은 컵과 일회용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가전용품도 버려진 채 방치돼 있었다. 근처에서는 건물 신축이 한창이었다. 해운대 609구역에서 나오는 길에 상가를 지키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철거가 거의 끝나 영업은 하지 않지만, 보상비 문제로 몇 곳이 남아있다는데 그중 한 곳인 듯 싶었다. 해운대 609는 아직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이지수 기자  jisooandlog@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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