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데올로기가 한쪽으로 치우친 대학보다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대학이 건강한 대학이다. 그래서 교수가 교단에서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 보 양보해서 친일적인 표현을 하는 것도 그 교수의 표현의 자유로 용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수가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지난 8월 12일 모 방송국의 탐사 기획 프로그램에 우리 학교  교수 두 사람이 등장했다.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닌 역사를 부정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승만 학당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한 교수는 일제강점기 위안부들이 강제 동원된 것이 아니라 돈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로 갔다는 주장에 동조했고, 다른 한 교수는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러한 주장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아픈 역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오다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23명이 남았다. 그들은 왜 위안부가 되었는가?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채워줄 여성들을 한국과 중국, 그리고 필리핀 등지에서 찾았다. △친일파 관리 △경찰 △군에 의해 10대 여성들을 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해서 일본군에 넘겼다. 이렇게 넘겨진 한국인 여성들은 외부와의 출입이 차단된 소위 ‘위안소’란 곳에서 철저하게 감시를 받으면서 일본인들의 성노예 생활을 했다. 패전 이후 일본군은 전쟁범죄인 성노예 증거를 남기기 않기 위해 위안부들을 참호나 동굴에 모아놓고 기관총, 폭약 등으로 몰살시켰으나 일부는 살아 돌아왔다. 그들의 부끄러운 삶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다가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88년이 되어서야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했고, 1996년 유엔 인권위에서도 일본군위안부를 ‘강제적 성노예(enforced sex slave)’라고 정의했다.

독도는 어떠한가? 512년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령했을 때 같은 생활권인 독도까지 신라에 편입했으며, 1900년 조선은 ‘독도는 울릉군에 속한 땅이므로 울릉군은 울릉도와 석도(독도)를 다스린다’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발표함으로써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이 공표는 일본이 독도를 일본에 편입시킨 내각회 결정보다 5년 빠르다. 따라서 독도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어떤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에 위안부 강제동원과 성노예화와 같은 반인권적·반인륜적 만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좇아 조선보다 앞선 일본에 대한 ‘로망’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우리 학교 교수가 공개적으로 동의하고 있고, 어떤 교수는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다시 말하건대 이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수의 이데올로기 성향이 극우이든 극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를 부정하는 교수는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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