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치는 땅>

(감독 임태규 | 2019)

고대 사회부터 가족 구성은 혈연에 기초했다. 이 사실은 현대사회에서도 변함이 없다. 드라마에서 가족 구성원에 친자가 아닌 인물이 있으면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족은 당연히 혈연으로 맺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가장 친한 친구 막냇동생이 입양되었단 이야기를 듣고, ‘입양 가족인데도 참 행복하고 보기 좋다’라고 무심결에 생각한 적이 있다. 필자 또한 혈연이 아닌  가족 구성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의 인식뿐만 아니라, 법도 혈연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민법> 제 779조에 따르면 결혼, 입양을 제외한 생활 공동체는 혈연이 아니라면 가족으로 인정될 수 없다. 그러나 영화 <파도치는 땅>은 이러한 사회의 통념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광덕(전영운 분)과 문성(박정학 분), 도진(맹세창 분)은 혈연가족이지만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 아니다. 광덕은 군산에서 어업을 하다 납북된 뒤 간첩으로 몰리게 됐다. 그의 아들 문성은 ‘간첩 아들’ 꼬리표가 괴로워 광덕과의 연을 과감하게 끊고 서울로 올라와 산다. 광덕이 임종을 맞이해도, 문성은 “그 부모들 이제 어떻게 사냐”라며 본인의 아버지인 광덕이 아닌 TV에 나오는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들을 가여워한다. 문성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혈연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혈연으로 묶인 도진에게 자상함과 사랑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광덕의 죽음을 존중하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죽음은 존중받고 싶단 문성의 새까만 속이 보인다. 그러나 도진은 문성에게 관심이 없다. 그가 관심 있는 건 사랑하는 윤아(양조아 분)와 윤아의 딸뿐이다. 도진과 문성은 가족임에도 남보다도 못한 사이처럼 무관심하기만 하다.

영화 속 만들어진 가족들의 사랑은 사회의 편견을 깨트린다. 도진과 윤아, 그리고 윤아의 딸을 보면 사회에서 규정하는 가족의 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의아할 정도이다. 사회의 통념상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광덕과는 남이지만 친손녀처럼 대해준 광덕의 애정이 고마워 아픈 광덕의 곁을 지키는 은혜(이태경 분) 또한 도진과 윤아와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가족’이란 옷을 입지는 못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애정으로 뭉쳐있어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만들어낸다.

도진과 윤아의 딸, 광덕과 은혜와 같은 만들어진 가족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교수와 제자로 만나 20년 이상을 동반자로 함께한 사람들부터,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까지. 혈연으로는 정의되지 않지만 사랑으로 정의되는 다양한 가족 구성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못한다. 이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수술 동의서도 써주지 못하고, 상속권 등의 법적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같은 집에 살면서 서로 싸우고, 울고, 웃는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사회 속에선 가족이 아닌 남남이다. 영화 속의 문성처럼 혈연만이 가족을 규정할 수 없음을 하루빨리 깨닫고, 이들을 인정하는 인식과 사회적 규정들을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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