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은 밤,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라는 금지곡으로 정해진 노래였다. 시민들은 의아함과 놀라움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혁명의 시작이었다. 

포르투갈은 1932년부터 A.O.살라자르의 장기독재 아래서 고통을 받았다. 그가 죽은 후에도 독재와 같은 체제는 유지됐다. 1960년대부터 그런 정치체재와 식민지 독립 탄압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1974년 2월 참모차장이었던 A.S.R.스피놀라가 식민지전쟁을 비판한 책을 내어 해임된 사건이 군부반란의 도화선이 됐다. 

1974년 4월 25일 밤 12시 25분 포르투갈의 국영 라디오에서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라는 노래를 틀었다. 이것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리스본 북쪽 끝에 있는 폰티냐 요새에서 오텔루 드 카르발류를 따라 공병연대 전체가 반란을 일으키고 병영을 점거했다. 쿠데타 자체는 놀라울 만큼 손쉽게 성공했다. 12개의 부대가 동원돼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 △공항 △군 총사령부 건물을 장악했지만, 저항은 거의 없었다. 약 50년 동안 유지돼 온 정권은 하루가 채 안 돼 무너지고 말았다.

처음에 쿠데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곧 △노동자 △농민 △여성 △젊은이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리스본의 주요 광장마다 군중이 모였고, 그들은 거리의 군인들이 들고 있는 소총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았다. 붉은색은 혁명을, 꽃은 평화를 상징했다. 4월 25일에서 5월 1일 근로자의 날까지 ‘파업자들의 축제’가 계속됐다. 

국외로 망명했던 사회당, 공산당 지도자들도 귀국했고, 5월 1일 참가자 전원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카네이션 혁명’을 벌였다. 5월 15일 스피놀라를 대통령으로, 변호사 파르마 카를로스를 총리로 선출하고 사회당과 공산당을 영입한 군 ·민연합의 새 정권이 발족했다. 포르투갈 혁명은 자국의 민주화의 길을 열고 식민지 제국을 해체시켰다.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소 고주현 교수는 <포르투갈의 민주주의 이행과정과 분석>에서 ‘포르투갈은 40여 년간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유지해왔기에 카네이션 혁명을 통해 오랜 기간 공고화된 권위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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