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영 소설가

정세랑의 소설을 알게 된 건, 소설 속 좋은 문장이나 문단을 발췌해서 알려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덕분이었다. 평소의 필자는, 소설은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구조물이라고 생각해서, 어느 한 부분만을 발췌하거나 확대해서 활용하는 방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부분만 보면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읽었을 땐 그 문장이 가지는 의미와 느낌이 퇴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문장만 읽었을 땐 별다른 감흥을 자아내지 못했던 것이 소설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땐, 의미가 있고 중요한 부분인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의 생각 때문에 SNS의 책 소개 계정을 유심히 살피는 일도 잘 없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지인이 리그램하지 않았다면 필자는 한동안 정세랑의 소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소개된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29.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에 처절하게 실패했다. 결혼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안 되겠다. 이불은 각자 덮자” 둘 다 돌돌 말고 자는 스타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한 이불 덮는 사이가 아니네” 농담을 했지만 여자는 솔직히 침대도 따로 쓰고 방도 따로 쓰고 싶었다. 가벼운 수면장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신혼부부의 잠자리 상황에 대해 짧게 묘사한 글이었다. 그다지 특별하거나 색다르지도 않은 에피소드를 낄낄거리면서 읽은 건, 신혼 초 필자가 겪었던 일이 자연스레 떠올라서였다. 드라마, 영화 속 달콤한 장면을 상상하며 남편과 팔베개를 하고 누었건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팔이 아프고 저려 왔다. 더욱이 남편은 필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코골이가 심했고, 필자도 예상했던 것보다 잠자리에 예민했다. 결국 남편과 등을 대고 돌아누워 도서관에서나 사용할 법한 귀마개를 한 채 잠을 자야 했다. 남편이 싫거나 미운 것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의 취침 습관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삽입한 소설은 도대체 뭔가. 필자는 친구의 SNS 계정을 따라가다가 이 소설이 정세랑의 <웨딩드레스 44>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캐나다데이 세일기간에 밴쿠버의 작은 창고에서 픽업되어 한국으로 수입된’ 웨딩드레스를 입게 된 44명의 여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번호순으로 짧은 에피소드가 나열되어 있는데 소설의 주 내용은 결혼 준비과정과 결혼식, 신혼생활이다. 필자가 읽은 에피소드는 이 드레스를 입은 스물아홉 번째 여자의 이야기였다. 

다섯 번째 여자는 스물세 살의 신부다. 대학 졸업도 안 한 예비 신부를 가리키며 어른들은 말한다. “어리고 깨끗하지” 그 말속에 들은 함의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기에, 신부는 수많은 의문들이 부글거리지만 입을 다문다. 열여덟 번째 여자는 친구들을 불러 청첩장을 전달한다. 그중에는 동성애자인 친구도 있다. 결혼이 피곤하고 불편한 제도라고 열을 내는 여자에게 동성애자 친구는 말한다. “내가 촌스러운 환상이 있나 봐, 나도 좀 해보고 싫어하든가 할게. 동거도 좋고,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일단 외치고 싶어. 우리 둘이 계속 함께하기로 정했다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열여덟 번째 여자는 생각한다. 결혼이란 것도 결국 법의 문제, 제도의 문제이며 그것 역시 누군가의 특권이라고. 스물두 번째 여자는 추운 겨울에 애써 만나지 않아도 겨울 내내 남자와 껴안고 있을 수 있어서 결혼을 한다. 연애와 결혼은 현실이지만, 때론 이렇게 낭만과 애틋함도 있다고 말해준다.

44개의 일화를 통해 이 소설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인식과 편견, 확신과 의심은 44명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기혼자와 미혼자, 비혼자 등 결혼과 연결된 여러 호칭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44번째 일화까지 읽고 나면 결혼보다는 연애, 연애보다는 사랑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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