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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호흡한다고?
  • 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01 23:59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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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자동차는 가솔린이라는 탄화수소 물질을 태워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만약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탄소와 산소로 분해해 수소를 결합하고 거꾸로 탄화수소를 만들어 엔진으로 넣을 수 있다면 에너지와 온실가스 걱정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순환구조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릴 적에 한 번쯤은 상상해 볼 만한 순환 시스템이다. 그런데 자연에는 포도당을 중심으로 이런 시스템이 존재한다. 바로 광합성과 호흡이다.

포도당은 자동차의 탄화수소처럼 생명체에게 중요한 연료다. 이 말은 포도당 속에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중요한 물질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가 없다. 포도당은 어디서 온 것일까? 독립영양 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포도당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 생물이 바로 5월에 온 세상을 푸르게 만드는 녹색식물이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넣을 그릇과 같은 공간이 필요한 것처럼 녹색식물에는 엽록체가 있다. 이 엽록체 안에 회로가 있다. 엽록체 안에 있는 엽록소는 녹색식물에서 발견되는 색소다. 마치 우리의 혈액에 있는 헤모글로빈과 유사한 구조다. 엽록소가 하는 일은 잎을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 이상의 위대한 일을 한다. ‘빛’을 이용해 ’물’을 분해하고 생성된 수소이온과 전자로 회로를 구동시킨다. 회로에 입력된 이산화탄소는 복잡한 회로를 거쳐 포도당으로 변한다. 물이 분해되며 생긴 산소는 공기 중에 버려진다. 이 과정이 ‘광합성’의 흐름이다. 

여기서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산소를 이용해 음식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단지 식물은 그 음식물을 광합성으로 직접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지구에서는 식물이 버린 산소를 이용하는 다른 생명이 나타났다. 동물은 스스로 포도당을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식물이 만든 포도당과 버려진 산소를 가지고 에너지를 얻는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식물의 엽록체처럼 특정 장소가 있다. 바로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다. 그리고 광합성의 회로처럼 여기에도 회로가 있다. 이 회로는 합성이 아니라 분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회로는 입력된 포도당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수소 양성자와 고에너지 전자를 떼어 낸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여기서 일부 수소는 산소와 결합해 물을 생성한다. 나머지 수소 양성자에 포함된 에너지는 ATP를 만든다. ATP(아데노신삼인산)가 바로 최종 연료 물질이다. 생명체는 ATP를 물로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포도당은 분자 한 개에서 36개의 ATP를 만들어 낸다. 엄청난 생산성을 가진 재료인 셈이다. 이렇게 포도당에 숨겨진 에너지원을 끄집어내는 것이 세포의 ‘호기성 호흡’이다.

반응 전체를 보면 광합성은 호기성 호흡 과정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과 같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순환된다. 이것이 자연의 위대함이다. 이런 순환 시스템으로 지구 위 생명체가 작동한다. 우리 몸도 포도당을 사용한다. 특히 뇌는 크기는 작지만 다량의 포도당을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실제로 몸에서 소비되는 전체 포도당의 50%를 차지할 정도다. 이것이 뇌세포에서 일어나는 호기성 호흡이다. 여기까지가 과학이다. 수많은 과학자에 의해 증명됐고 의심 없이 설명 가능한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뇌호흡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시 등장했다. 뇌호흡은 역사마저 깊다. 종교에서 말하는 참선의 수행 방법의 하나인 명상이 뇌과학과 융합하며 뇌호흡이라는 분야로 나타났다. 제도권으로 들어오며 대학과 연구소가 설립되고 실제 과학자가 고용돼 일하고 있다. 서점에서도 뇌호흡 관련 서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두뇌를  개발하고 학습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마케팅으로 교육 시장까지 침범했다. 과학 관련 서적 판매량은 초판을 넘기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책들이 수십만 권 이상 팔린다. 최근 뇌호흡을 주장하는 단체의 학회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후원을 하려다 논란이 일자 철회한 사건이 있다. 수많은 의심이 곳곳에 있다. 의심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증명할 것이 남았다는 거다. 의심해야 할 것에 의심하지 않는 것이 맹신이다.

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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