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감독 장률 | 2018)

윤영(박해일 분)과 함께 군산에 온 송현(문소리 분)이 일본식 적산가옥이 늘어선 도시의 풍경을 마음에 들어 한다. 가만히 듣던 윤영이 넌지시 ‘윤동주 시인 좋아한다고 그러지 않았나? 윤동주 시인이 일본 형무소에서 죽었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송현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라며 발끈한다. 군산이라는 똑같은 공간이 송현에게는 일본 문화가 스며든 아름다운 곳인 반면, 윤영에게는 일본 식민지 지배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곳인 것이다. 이 경우 우리라면 둘 중 누구의 시선으로 군산을 바라봤을까.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과거 역사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송현과 윤영은 역사를 두고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실제 삶에서 이중적이긴 마찬가지다. 송현은 조선족 권익 보호 시위에 동참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조선족이라 오해받자 불쾌해 한다. 윤영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조선족 출신 가정부에게 조선족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말리지만, 가정부의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무관심하다. 즉 정치·역사적인 관점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이 마주한 현실에는 분노하고, 조선족에 대한 편견은 버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역사를 허울뿐인 관점으로만 말할 때 자신의 일상과 생각이 괴리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순은 과거 역사를 ‘관점’으로만 말하는 데서 기인한다.

역사를 관점으로만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과 다른 특별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란 근본적으로 과거 사람들이 살아가던 일상에서 생겨난 일이다. 조선족으로 오해받기 싫어하는 송현이지만 그도 만약 1930년대 만주로 갔던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조선족이다. 송현과 윤영이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도 만주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조선족 시인이었을 것이다. 이에 송현은 ‘이게 다 우연이야 우연’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역사는 과거의 시간과 공간, 거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든 우연에서 비롯됐다. 이 점을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일상에서 과거의 시간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영화를 만든 장률 감독은 우리가 역사를 두고 관점으로 대립하면 의견이 갈리지만 일상에서 소통하면 화합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때 소통이란 과거의 잘못은 분명히 짚고 반성하되 서로의 문화에 대한 호감은 그것대로 인정함을 의미한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일이 아닌, 지금의 일상이 과거와 함께 호흡함으로써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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