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환(국어교육) 교수

 

지난 21일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고를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참담한 마음이다. 남의 일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당장 필자가 있는 제2사범관과 사고가 일어난 미술관의 거리는 멀지 않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그 좁은 길은 실제로 필자가 점심 때 혼자 학생회관으로 갈 때 종종 걷던 길이기도 하다. 사고 이후 붉은 벽돌을 보면 괜스레 무서움증이 일어난다. 사고 발생 후 붉은 벽돌로 바깥벽을 두른 제2사범관은 미술관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뒤로 건물에 들어올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건물 바깥을 어슬렁거릴 때에도 가능하면 건물 벽에서 멀찌감치 떨어지게끔 의식적으로 동선을 잡곤 한다. 필자가 제2사범관 벽에 기대어 서거나 앉는 일은 아마 다시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필자는 아마 괜찮을 것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사고가 일어나던 그때 필자는 ‘다행히도’ 그곳에 없었다. 큰 사고가 일어난 만큼 이제 학교에서 안전에 보다 신경을 쓸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필자가 있는 제2사범관에도 긴급 안전 점검이 이뤄졌다고 들었다. 필요한 조치가 적절히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필자는 큰 사고에 휘말리는 일 없이 안전하게 교수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부끄러운 마음이 남는다. 단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학교의 이름이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언급되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학내 구성원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또한 학생들이 배움을 받는 데 큰 불편을 초래한 학교를 질타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부끄러움은 필자의 마음에서 온다. 그러니까 필자가 우연히도 그 곳에 없었던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강화될 안전 관리를 예상하며 학교의 교원인 필자가 앞으로 보장받을 것들을 재어보며 안도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슬퍼하기 전에 안도했고, 다시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고의 피해자는 환경미화 업무를 담당하시던 어르신이라고 들었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2016년의 서울 구의역 참사가 그랬지만, 이런 처참한 사고들은 한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취약한 사람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니까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 있다. 그 경우 우리의 생존은, 사실은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피해를 가장 취약한 누군가에게 전가해버린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보다 먼저 안도를 느끼는 필자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은, 말단 교수로서 교수사회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필자가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사회적 공모(共謀)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탓이기도 하다.

차라리 이 비극적인 사고의 피해자가 존경받고 대우받는 교수였다면, 필자는 조금 덜 부끄러웠을 것 같다. 그랬다면 안도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고의 부끄러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는 보다 덜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정 자체가 더욱 부끄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애도는 한량이 없어야 하며, 사고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부끄러움과 함께 긴 시간 간직돼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이지만, 참담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사고 피해자를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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