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의 죽음. 죽음의 이유를 찾던 중 누군가 한 사람을 지목하자, 기다렸다는 듯 모두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그 사람이 정말 살인자가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죄책감을 떠안을 사람이 필요할 뿐. 영화 <죄 많은 소녀>는 한순간에 ‘죄 많은’ 사람이 되어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경민(전소니 분)이 갑작스럽게 실종됐다. 강 위 다리에서 경민의 소지품이 발견되면서 자살로 추정되는 가운데, 경민의 행적을 좇기 위한 수사가 한창이다. ‘평소 경민이는 어떤 아이였나’, ‘최근에 이상한 점은 없었나’ 같은 반 친구들을 조사하는데, 영희(전여빈 분)를 보는 경찰의 눈빛이 유독 매섭다. 영희와 함께 있는 경민의 마지막 모습이 CCTV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영희는 경민이 목숨을 끊은 날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경민을 죽게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는다. ‘네가 경민이한테 자살을 생각할만한 얘기를 꺼냈니?’, ‘너 지금 돌이켜 봤을 때 경민이한테 미안하거나 걸리는 거 있어?’.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는 영희의 말에도 경찰은 점점 더 영희를 압박한다. 의심은 점점 사실인 것 마냥 영희를 옥죄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경민의 유서를 찾는다며 영희의 책상을 뒤지고, 경민의 엄마(서영화 분)는 영희에게 ‘네가 경민이 그렇게 만든 거야’라며 뺨을 내리친다. 

경민의 죽음을 떠안게 된 영희. 아무도 영희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다. 참다못한 그는 경민의 장례식장에서 휘발유를 삼킨다. 사람들은 피범벅이 된 영희의 모습을 보고서야 영희의 얘기를 듣기 시작한다. 

영화는 사람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람들은 경민의 죽음에 대해 저마다 죄책감을 가진다. 일에 몰두하느라 딸에게 소홀했던 엄마, 학생을 보듬어주지 못한 학교,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한 영희. 이들은 모두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내고자 시선을 밖으로 돌린다. 학교 교장은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말에 “그럼 학교가 뭐가 되나, 그럴듯한 이유를 좀 말해보라”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경민의 엄마는 영희를 거칠게 몰아세운다.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들에게 그것이 사실인지,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실은 점점 왜곡되고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경민이 어떻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죄 많은 소녀’가 된 영희를 열심히 비난하고, 질책할 뿐이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성급하게 누군가의 잘못으로 단정 지어버린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누군가’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말은 참혹하다. 영화 말미 만신창이가 된 영희와 여전히 모든 것을 영희 탓으로 돌리는 경민의 엄마 모습은 결코 그 끝이 행복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