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1979년 10월 26일 늦은 밤 궁정동의 안가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KBS 충청남도 당진의 송전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회식을 하던 중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김재규 부장에 의해 암살된다. 이른바 10·26 사태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 이후 18년의 장기 집권에 종말을 고한 순간이었다. 1972년 10월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을 정지시킨 유신헌법을 통해 강압적인 철권통치를 하던 독재자 박정희의 비극적인 최후였다. 정국은 긴박하게 흘러갔고, 그동안 억눌러 있던 민중들의 민주화 요구는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면서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이듬해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월 17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광주 시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돌입했고,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것이 39년 전,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일어난 광주민주화 운동이다. 

1980년 중후반 때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광주민주화 운동의 비디오를 보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 가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의 노래가 방송과 길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던 그때, 필자도 88꿈나무라는 애칭을 들으며 봄꽃이 만발한 3월에 입학했다. 막걸리 냄새가 진동하는 음침한 분위기의 동아리 방에서 선배들은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민들을 총칼로 진압하는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아마 수천 번은 복사가 되었을 영상은 매우 낮은 수준의 화질과 음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왜? 그동안 우리는 광주에서 북한 간첩이 침투하여 폭동을 일으켰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시절에 대학생들 중 교문 앞에서 또는 거리에서 짱돌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행동은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빨갱이로 생각했던 미안한 감정과 부채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이 ‘폭도’로 매도된 데에는 당시 언론의 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군부의 철저한 언론 보도통제 때문에 광주민주화 운동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1980년 5월 21일이었다. △동아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MBC 등 중앙언론들은 각각 ‘광주일원 데모사태, 학생과 시민들 광주서 소요, 사망자는 군경 5명과 민간인 1명, 폭도 소요’ 등의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KBS는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특집방송을 내보며 계엄당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했다. 5월 27일 계엄군이 광주시내로 진입하여 시민군과 총격전 끝에 진압을 한 후, 5월 28일에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보호하고 극렬분자를 조속히 가려내고 기타는 과감히 관대한 처리를 해야 한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광주사태를 진정시킨 군의 어려웠던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라고 썼다. 비극의 현대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언론이 보여준 굴종의 모습이었다.

2004년 5월 26일,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편집장의 이름으로 전례 없는 사설을 게재했다. ‘The Time and Iraq’라는 제목으로 나온 사설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동안 잘못된 보도에 대한 사과문이었다. 구체적인 날짜와 보도 기사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와 국제 테러리스트와의 연계 등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해 이라크 전쟁 보도의 엄격함과 회의주의가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필자가 과문해서인지 우리나라 언론이 5·18 민주화운동의 보도 관련하여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직도 진실이 명확히 규명되지 못한 상황과 일부 몰지각한 정치꾼들의 억측 주장을 검증 없이 중계보도하는 언론이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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