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간의 우리학교 역사 속에서 캠퍼스 건물은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과거의 기억을 보존한 채 남아 있는 건물과 미래의 비전을 품은 채 새로 지어진 건물도 있다. <부대신문>에서 개교기념특집으로 특별한 의미나 역사가 있는 캠퍼스 건물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현재 건설관이 있던 자리에는 도서관으로 활용되던 건물이 있었다. 1966년 개관한 당시는 도서관으로 불렸지만, 1980년 현재 새벽벌 도서관이 지어지면서 구도서관으로 불리게 됐다. 구도서관은 1984년 개축하여 과학분관으로 개관했다. 이후 1999년 명칭이 자율도서관으로 변경돼 운영됐다. 하지만 2008년에 해당 건물은 현재의 건설관을 짓기 위해 철거됐다. 이후 2010년에 준공된 건설관은 건설융합학부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건도(건설관 도서관)’라고 불리는 900석가량의 열람실을 가지고 있다

운죽정은 구름과 대나무 숲이 어우러지는 정자라는 뜻이 있다. 현재 운죽정이 있는 공간은 과거에 테니스장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1975년에 공사가 진행되며 학생휴게실이 세워졌다. 학생휴게실에서는 간단한 먹거리를 팔았고 근처에서 사람들끼리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2002년부터 건물 내에서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영어 카페로 탈바꿈했다. 당시 다양한 축제도 열려 외국 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는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박물관은 본관과 별관이 있으며, 두 건물 모두 1956년에 설립됐다. 본관은 설립된 당시 대학원으로 사용됐다. 그 외에도 △교실 △중강당 △학생열람실 △도서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특히 중강당으로 활용되던 때에는 건물에서 졸업식과 학위수여식 등이 거행되기도 했다. 이후 음악관으로도 쓰이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본관 전체를 박물관이 사용하게 됐다. 별관은 설립 이후부터 계속 박물관으로 쓰였다. 1994년 박물관 본관으로 △전시 △행정 △연구 공간이 이전되면서 현재는 유물수장고로 사용되고 있다.

1959년에 설립된 인문관은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자인 김중업 건축가가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 설계한 첫 작품이다. 1층에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인 필로티를 설치해 건물이 지면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인문관은 1995년까지 대학 본관으로 이용됐다. 캠퍼스에 건물이 적던 시절에는 인문관을 △문리대(현 인문대와 자연대) △법대 △상대 등이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인문대를 제외한 다른 단과대학이 다른 건물을 이용하게 되면서 현재는 인문대만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인문관은 2014년에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641호로 지정됐다. 변칙적인 모듈에 의한 평면 구성과 높은 층높이, 전면 계단실의 넓은 유리를 통한 파노라마 경관 등 인문관의 특징이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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