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민 (전기컴퓨터공학 14)

필자가 고등학생 때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시를 썼던 경험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축제가 열려 동아리별로 부스를 연적이 있었다. 속해 있던 동아리를 담당하신 선생님께서는 시를 전시하자고 했다. 글보다 수식이 더 친한 이과였지만 새로운 도전을 할 좋은 기회라 여겨 시를 써보기로 했다. 시를 제출하는 날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듣지 않고 시를 쓰는데 몰입했다. 그렇게 제출한 시는 축제 당일 파란 파스텔 빛 배경과 시 제목인 굼벵이가 그려진 액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때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비록 짧은 글이었지만 필자의 생각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정말 뿌듯했다. 그때의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 낭만으로 남아 있다.

부대신문에 들어온 이유도 글을 쓰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인지 신문사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는 모든 과정이 신기해 재밌었다. 스스로 생각한 주제로 기사를 작성할 땐 내심 좋았다. 학교에 있는 여러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수님을 인터뷰하는 것도 부대신문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취재 도중 취재원에게 “기자님은 기사를 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관련 자료와 규정안을 찾아보고 물어봤는데 도리어 면박만 들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땐 속이 상해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흘려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걱정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정말 기사를 쓸 준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쓰는 게 아닌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이젠 기사를 쓰면 쓸수록 기사가 무겁게 다가왔다. 기사는 이해당사자가 있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게 되면 많은 오해가 생기게 되고 기자와 신문사가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시를 쓰거나 혼자 생각한 걸 적었던 글과는 많이 달랐다. 한 글자씩 쓸 때마다 부담감도 하나씩 늘어났다. 이런 부담감에 취재원의 말이 왜곡되거나, 사실이 들어가지 않을까 봐 기사를 여러 번 보게 된다. 실수는 적어졌지만, 기사를 쓰는 것도 소극적이게 변해버렸다. 그로 인해 즐거움도 예전만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무게감에 압도당해 글을 쓰는 재미를 잃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 해왔던 것처럼 기사의 무게감마저 긍정하고 싶다. 니체가 말했던 초인(위버멘쉬)처럼 말이다. 아기처럼 웃으며 무게감조차 나의 일부였던 것처럼 가지고 가는 것이다. 다만 필자는 본격적으로 기사를 쓴지 채 2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기사의 무게감을 바로 해결하고 싶지만 아직은 낙타처럼 묵묵히 압박감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병아리가 달걀을 깨듯 계속 노력할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웃으며 기사를 쓸 것이다. 나중에 대학생활을 떠올렸을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신문사가 될 수 있게 다시 재미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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