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천 문사철 대표

1946년 9월 어느 날 북한의 김일성은 연설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남조선이 북조선보다 그저 뒤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남조선도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는데 북조선보다 좀 더디게 나아갈 뿐이라고 하는 전혀 그릇된 생각입니다. 실지에 있어서는 북조선이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반면에 남조선은 전혀 딴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남조선은 남한, 북조선은 북한을 뜻한다. 어떤 독자들은 남조선과 북조선이 바뀐 것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방 직후 북한의 정치 세력은 대체로 김일성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토지개혁을 비롯한 일련의 반봉건 민주개혁에 성공해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반면 남한은 미군정 치하에서 민주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일성의 생각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북한이 남한에 앞서 있었다. 정치적으로야 북한이 남한보다 더 민주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민주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4.19혁명이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았더라면 달랐겠지만,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이나 어디다 내놓고 자랑할 만한 체제는 아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북한의 집권 세력은 드러내놓고 ‘남한 붕괴론’을 주장했다. 그들이 보는 대한민국은 사실상 미제국주의의 통치를 받으며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경제적 굴레에 묶여 있는, 저주받은 ‘식민지 반봉건사회’였다. ‘언제 어떻게’가 문제일 뿐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보았다. 
 

북한이 그렇게 남한 붕괴론에 빠져 ‘인민’들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동안 남한은 기적처럼 일어났다. 수출 기업들에 특혜를 제공하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방식이긴 했으나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북한이 볼 때 자본주의가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던 후진국이 제3세계의 발전을 앞장서서 이끄는 신흥 경제 강국으로 급성장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마침내 북한 경제를 앞지르더니 1986년 3저 호황을 맞아서는 더 이상 북한이 쫓아올 수 없을 만큼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게 낫겠다’는 비아냥거림을 받던 독재국가가 민주주의국가로 극적인 변신까지 했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북한이 경제적 추락은 물론 시대착오적인 세습통치의 굴레에 빠져들고 있을 때, 남한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적인 제3세계 국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북한을 지탱해 주던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졌다. 이번에는 남한에서 ‘북한 붕괴론’이 대두되었다. 이미 안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던 북한 사회가 밖으로부터 오던 도움의 손길마저 끊겼으니 어떻게 버티겠느냐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정부나 재계나 국민이나 ‘언제 어떻게’가 문제일 뿐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보았다.
  남한이 그렇게 북한 붕괴론의 기대감에 빠져 여유를 부리고 있는 동안 북한 정권은 믿을 수 없는 생존본능을 발휘했다.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도 살아남았다. 그들이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있을 때 오히려 남한이 예기치 않은 IMF 외환위기를 만나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북한은 여전히 고립을 초래한 세습 독재와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중 패권 결의 틈새를 이용해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분단 70년간 남북을 가로지른 ‘붕괴론’의 평행이론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이 세상에 그냥 붕괴하는 것은 없다. 안일하게 상대방의 붕괴를 낙관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언제 그 낙관이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게다가 내버려도 붕괴할 거라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오랜 역사를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해 갈 동포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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