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나생문(羅生門)’ 혹은 ‘라쇼몽 효과’라는 표현이 있다. 나생문은 세계적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에 만든 영화이다. 이 작품은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영화 매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청했을 법한 영화다. 라쇼몽 효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인데,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물론 이미 오래전에 서구 지역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외교정책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라쇼몽 효과의 첫 번째 장면은 이렇다. 먼저 한미동맹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가장 신뢰할만한 외교·안보 자산이다. 동맹 관계는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유기체처럼 이동하기 마련이다. 한미동맹이 최초 성립되었던 1953년과 비교해 보자면, 한국의 경제성장과 세계적 지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했으니 동맹균형점이 이동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한미동맹의 최적화된 관계설정에는 이러한 변화가 적절히 반영되어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지난 시절 다소 아쉬웠던 면이 있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이런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있고,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동맹 관계의 바람직한 정립을 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 긴말한 협조체제가 요구되는 터라,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이 충돌하지 않도록 무척 신경 쓰고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의 잦은 전화 회담 때마다 우리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功)을 돌리고 기회마다 ‘엄지 척’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중 관계 역시 점차 좋아지고 있다. 오직 국익만을 생각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2017년 말 중국 방문을 성사시킨 다음,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피해도 차츰 줄어들고 있고,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잘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일 관계 역시 가끔씩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그때그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역사적이고 가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그동안 왜곡되었던 한일 관계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내고 있다. 국가 간 관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주고받고 있지만, 한일간 기업 및 민간 차원은 여전히 긴밀한 상호의존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문제야 말로 우리 정부의 역량이 잘 발휘되고 있는 분야이다. 1993년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어느 정부도 지금처럼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해 낸 적이 없다. 대통령인들 북한이 미덥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 왜 없을까? 이럴 때일수록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마음으로 북한의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관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라쇼몽 효과’의 두 번째 장면을 들여다보자.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는 점차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내심 한국이 중국의 울타리 속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긴밀한 공조체제가 잘 안 된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중국 역시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변하는 마당에 본인의 역할이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간 중국이 주장하던 ‘비핵화-평화체제’가 동시에 진행되고는 있지만 혹시라도 한국이 중국의 역할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일본은 그야말로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역동성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입장이 자꾸 바뀌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한일관계의 신뢰를 만들어 갈지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어쨌든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민주주의 국가인데 양국이 서로 더 많은 이득을 만들었으면 하는 게 일본의 생각이다. 
 

북한 문제의 라쇼몽 효과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필자의 마음이나 독자분들의 마음이 한결같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장에서 북한이 이탈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착시 현상’ 없는 한국 외교의 길을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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