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세은(예술문화영상학 18)

“자 이제 똥 쌀 시간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똥 싸기를 해봅시다.”

중학교 3학년, 생활 국어 선생님께서 매번 글쓰기 수업 시간마다 하신 말씀이다. 그 수업에선 늘 시를 써서 내야 했는데 나는 항상 고심하느라 20분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하다가 10분 만에 아무렇게나 쓴 시를 내곤 했다. 타고난 글재주나 남다른 센스가 없었던 나는 그저 칭찬받고 싶은 학생이었다. 너무 잘하고 싶은 욕구가 앞서 글쓰기에 재미보다 부담을 먼저 느껴버렸다. 그때 내가 변비임을 깨달았다.

22살이 된 지금, 아직도 변비에 걸렸음을 매 순간 느낀다. 일례로 지금 일하는 곳에서 SNS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3줄 남짓의 짤막한 말 한마디 만들어내는 게 너무 힘들어 게시물 하나를 업로드 하는 데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곤 한다.

뿐만 아니라 말도 잘 못 한다. 싫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뭐가 왜 좋은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잘 못 하겠다. 왜 이런 것일까. 언제나 나의 주관보다 타인의 ‘평가’를 더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비롯된 습관은 나를 점점 잃게 만들었다. 

‘고마워’,‘미안해’,‘~같아’,‘~이지 않아?’ 평소에 자주 쓰는 말들이다. ‘고맙다’는 많이 할수록 좋은 말이니까 괜찮다. 그런데 ‘미안해’의 남발은 썩 유쾌하지 않다. 미안한 일이 아닌데도 그것에 대해 해명하려면 말이 길어지니까, 또는 그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던 때가 있었고, 그건 늘 더 안 좋은 상황을 불러왔다. 그리고 습관처럼 미안을 외치다 보니 항상 나는 을의 입장이 되었으며 자연스레 점점 움츠러들었다. 언젠가 많이 소심해졌음을 느낄 무렵, ‘~같아’, ‘이지 않아?’와 같은 말을 습관처럼 쓰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지는 꽤 오래 됐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잠자기 전에 그 날 업로드된 웹툰을 읽는 건 빼먹지 않는 일과면서 고전을 읽거나 일기 쓰는 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해결법을 찾기 위해 앞서 말한 두 가지를 꼭 챙겨하지 않아도 똑 부러지는 친구들을 관찰해봤다. 그들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본인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들이란 것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타인을 깎아내리려 하는 이들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고 그들은 늘 당당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존중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자존감 높이기 연습을 하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씩 나 칭찬하기, 내가 좋아하는 것 떠올려보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챙기기 등등.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누군가의 평가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똥을 싸야 할 상황이 많이 생기고 한동안 나는 또 힘겹게 똥을 누겠지만,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변비가 낫듯이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나의 변비도 점차 치료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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