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영 소설가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민망하지만, 나는 초록색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첫 책이 나온 후, 책에 대한 기사와 리뷰들이 인터넷에 올라오던 즈음이었다. 블로그와 인터넷 서점의 리뷰, 별점들을 보고 읽으면서, 나는 감사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을 동시에 가져야 했다. 책을 읽고 정성껏 써 준 감상문에 감동하면서, 내 의도와 다른 후기들에 마음을 조금 다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보다는 전자가 훨씬 크게 작동했는데, 그건 내 손을 떠난 책들이 누군가에 의해 읽히고 되받아 쓰이는 과정들을 부지런히 통과하고 있어서였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독자가 없다면 서랍 속의 묵은 일기장과 같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검색을 하다가 중고서점에 내 책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정가의 반 정도 되는 가격으로 ‘상태 최상급’이란 첨언이 달린, 헌 책이라기보다는 새 책에 가까운 책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책이 누구의 손에 들릴까 보다는, 그 책을 파는 사람의 심리가 더 궁금했었다. 책이 재미가 없나? 시시했나? 왜 파는 거지? 재미없으면 친구를 주거나, 그냥 책장에 꽂아두지. 며칠을 사이트에 들락날락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있다. 

이기호의 소설 <최미진은 어디로>를 읽으며 깔깔거리고 웃은 건, 바로 위에서 말한 나의 상황이 소설 속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작가 ‘이기호’는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제 책이 헐값에 거래되는 것을 알고, 판매자인 ‘제임스 셔터내려’에게 직접 책을 사러 간다. 광주 송정역에서 일산의 정발산역까지 KTX를 타고 자신의 책을 직거래 하러 가는 작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책을 헐값에 파는 판매자에게 화가 났을까, 책이 신발이나 유모차처럼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 어떤 모욕감을 느꼈을까. 판매자는 작가이자 손님인 이기호를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떠난다. 그날 밤, 작가는 ‘제임스 셔터내려’에게 전화를 한 통 받는다. 그 책은 옛 연인이었던 ‘최미진’이 주고 떠난 것이며 더 이상 좁은 집에 책을 둘 때가 없어서 파는 것이라고. 

“그런데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꼭 그 말을 들으려고……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 전화는 거기에서 뚝 끊겼다. 소설 속 작가 이기호도, 중고나라 판매자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호는 판매자의 마지막 말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생각한다. “나는 나의 적의가 무서웠다”라고.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작가는 중고나라에서 싼 값에 팔리는 제 책을 보고 자신이 어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책이란 제 정신의 일부이며, 피와 땀을 흘려 정성껏 갈고 닦은 영혼의 집 같은 것.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꼈던 그에게 덤핑 처리되고 있는 제 책은 자신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일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자신이 받은 모멸감을 어떻게 해서든 해소하기 위해 작가는 판매자를 찾아 나섰지만, 판매자는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책을 판 것이 아니었다. 아주 단순한 이유, 옛 여자친구가 두고 간 책을 이사하기 위해 판 것. 그리하여 판매자는 다시 말한다. 그렇게까지 찾아와서 나를 모욕 주고, 무안 주는 게 옳은 일이냐고, 내가 얼마나 많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사는데. 물건 하나 파는 일에서조차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냐고.

깔깔거리면서 읽기 시작한 소설이 마지막에 가선 씁쓸하고 떫게 느껴진 건, 소설 속 작가의 심정을 내가 너무나 잘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중고나라에서 내 책을 파는 판매자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며, 어떤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파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먼저 상대의 의도를 넘겨짚어서 생각하고, 스스로가 모욕을 당했다고 여기면서, 상대에게 그것을 되갚음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을’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갑’의 자세를 취하는 나의 모습, 그 모습을 떠올리자니 소설의 마지막 문구처럼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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