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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미터 상공에서 울려퍼진 그들의 목소리
  • 오시경 대학·사회부장
  • 승인 2019.04.28 20:05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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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회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되고 정부에 의해 천대받는 현실에서 우리는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높은 크레인 위에서 노조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4월 29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파업 현장에서 공권력 행사에 대해 항의했다. 1988~89년과 90년 초 2차례에 걸쳐 당국의 공권력 행사로까지 발전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이 이어졌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설립 당시부터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회사가 먼저 어용노조를 설립했기 때문에 이를 무효화하기 위한 장기간의 투쟁 끝에 민주적인 노조가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1988년 6월부터 시작된 단체협상 과정에서 노조는 많은 탄압을 받았다. 1988년 12월부터 1989년 3월까지 파업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1990년의 투쟁을 앞두고 현대그룹과 국가는 현대중공업 노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노조 간부들을 구속하고 수배조치를 내린 것이다. 대의원대회는 이를 노동자 탄압으로 간주해 4월 25일부터 전면 총파업을 결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 그룹은 경찰에게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 정부는 4월 28일을 공권력 투입 날짜로 정하고 울산에 1만 2천여 명의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에 노동조합은 공권력 투입 시 골리앗 크레인을 점거해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78명의 노조원들은 4월 26일 밤부터 82미터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에서 농성을 준비했다. 4월 28일 경찰은 이른바 ‘미포만 작전’을 개시했다. 현대중공업을 향해 경찰 대병력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 병력은 현대중공업으로 진입해 많은 노동자들이 연행시켰다. 

하지만 골리앗 위의 78명은 계속해서 크레인을 점거한 채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을 자극해 대규모 길거리 시위가 이어지게 했다. 농성 이후 회사와 노조간의 한차례 대화가 있었지만 이 또한 결렬됐다. 그 과정에서 식수가 바닥나는 등 악조건이 이어지면서 노조원들은 농성 13일째 되던 날 골리앗에서 내려와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 이렇게 투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노동운동탄압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진행한 투쟁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오시경 대학·사회부장  sunlight1105@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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