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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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제한. 낙태버스. 여성 불임시술. 세 개의 단어는 1960년대 시대 사람들이 자주 듣고 보았을 것이다. 당시 정부가 인구수에 따라 출산을 적극적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낙태버스를 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제도를 안다. 최근 낙태버스와 비슷한 맥락에서 시행됐던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됐다. 두 제도의 공통점은 국가가 여성의 몸에 끊임없이 개입한 것이                  다. 앞으로 국가의 개입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생산권이 여성의 권리라는 것을 알고 지켜내야 한다. 이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숙제가 될 것이다. 

재생산권은 무엇인가. 여성은 아이의 수를 결정할 권리를 지닌다. 또한 강제 불임시술이나 원치 않는 임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외에도 생명의 관점에서 공권력에 의해 강간이나 낙태를 당하지 않을 권리와 건강을 지키기 위한 혜택을 받을 권리도 있다. 

여성은 재생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낙태죄가 시행될 때는 여성의 건강권이 침해당했다. 수술비에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고 비용을 여성 혼자 감당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글만 읽어도 ‘돈’이 없어 낙태를 못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낙태 시술을 위해 드는 몇 백만 원의 비용은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접근성’을 제한한 것이다. 그리고 낙태 시술은 낙태죄에 근거한 불법이었다. 이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병원도 제한적이고, 열악했다. 여성의 재생산권이 실현되는 곳이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낙태죄를 폐지한 지금은 재생산권을 보장할 수 있는가. 

여성은 재생산권이 통제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환호’다. 우리나라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드디어 승리했다’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권리가 지켜진 것에 환호한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꾸준히 재생산권이 침해당했음을 보여준다. 필자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기뻤지만, 낙태죄 폐지는 재생산권 존중의 ‘첫걸음’으로 그 이후가 막막하기도 했다. 

재생산권을 침범하는 사회적 인식이 많다. 임신 기간이나 사유를 이유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처벌하겠다는 발상도 있다. 다섯 가지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기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재생산권이다. 하지만 사회 인식이나 분위기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면 낙태죄가 폐지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낙태죄 폐지의 사유가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존중 아닌가. 사회에서 뒷받침해주는 교육과 정보 그리고 의사결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재생산권의 시작이다. 프랑스는 1975년 낙태가 합법화됐지만, 2004년까지 낙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정부 기관의 사이트가 부재했다. 정보를 아는 것도 재생산권 중 하나다. 하지만 프랑스는 낙태법 폐지 후, 다음 단계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던 것이다. 해당 사례로 낙태죄 폐지 이후 우리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낙태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없애야 한다. 낙태를 한 여성을 ‘피해자’ 혹은 ‘헤프다’라고 바라볼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재생산권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은 우리는 ‘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국가는 피임과 성관계에 대한 책임 의식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낙태죄 폐지 다음 순서는 차별적 시선을 지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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